1월 2일(日), 주일예배와 사무총회 마치고 무주군 설천면 신선 마을로 차를 몰았다. 무오당(无惡堂)이 목적지이다. 외우(畏友) 이상욱 목사가 그곳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만으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목사는 나의 사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 보고 있을성싶은 사람이다.

"머리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신선마을에 와서 힐링하고 가세요.“

무주군 심산유곡에 있는 신선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Shangri-La)가 떠오른다. 속세와 단절된 마을이란 공통점 때문이리라. 이름도 신선마을이다. 마을 입구 자동차 차단기를 경계로 이상향과 속세가 갈라진다.

덕유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유무형 관리·감독을 받고있는 마을이다. 개발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농사에 농약 사용도 금지되고, 가금(家禽)도 관리사무소의 허락 없이 치지 못한다. 인공이 절제된 자연 그대로의 요람이다.

얼마나 청정지역인지 암 환자가 이 마을에 들어와서 3년 반 만에 완쾌되어 살던 도회지로 돌아갔겠는가. 이 목사와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성을 쌓았다. 만날 때마다 나누는 얘기는 엇비슷하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다. 개인이 살아온 인생 역정,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처럼 가솔(家率)을 거느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고생한 가족사,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느낀 순간 순간들...

밤새 나눈 대화의 여독(旅毒)으로 늦잠을 잤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새벽 기도는 뛰어넘고 말았다. 자연의 품에 안겼다는 해방감에서일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부리는 투정의 마음에서랄까. 일단 합리화의 방도를 생각해 보고 오전엔 독서삼매(讀書三昧). 독서 중간중간 짬을 내어 주고받은 말들을 종합하면 건강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겠다는 거였다. 이 건강엔 육신적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물론 영적 건강까지 포함된다. 셋이면서 하나로 통하는 것들이다.

적성산 전망대를 7km 남겨놓고 우리는 멈춰야 했다. 눈길의 위험성 때문에 길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출 광경이 일품이라는 적성산 전망대에 일몰을 보기 위해 가기로 했다. 대(臺)에서 시간 맞춰 동쪽을 보면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듯이 또 일몰 시각 그곳에서 서쪽을 주시하면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오당을 출발해서 한 30분? 잔뜩 기대를 하고 왔지만 이게 웬일?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 되고 말았다. 겨울철 도로 설빙(雪氷)으로 사고 발생을 우려,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아마 적성산 전망대 길 중턱이 될 텐데, 거기까지 와본 것만 해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고들 스스로 위로했다.

할 수 없지 뭐!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유명 맛집을 찾았다. 이 목사는 몇 번 온 곳인 듯 주인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천지가든' 무주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도 들려 식사를 했다고 하니 그 유명세를 짐작할 만했다. 능이버섯 전골을 주문했다. 전주의 것에 버금갈 만큼 식탁이 풍성했다. 음식을 주제로 또 식중담화(食中談話)가 이어졌다. 갑자기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유붕이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유명 음식점에서 포식을 하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처소를 향했다. 대단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즐겁지 아니할 수 없다.

무주군뿐 아니라 전국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음식점 '천지가든' 이곳엔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들려 식사를 하고 갔다고 귀뜀했다.

* 사족(蛇足) - 무주군 설천면 신선마을에 있는 이상욱 목사의 쉼터 집 무오당(无惡堂)이라는 당호는 내가 즉석에서 지은 것이다. '미워함이 없는 집'이란 뜻이다. 한자 '惡'는 '미워할 오'도 되지만 또한 '악할 악'으로 더 자주 사용되는 글자다. 그렇다면 '无惡堂'은 '악한 것이 없는 집', 즉 '선한 집'이란 뜻도 담고 있다. 이래저래 어느 쪽으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처음 이름을 드러내는 것인데, 아무래도 발음상 '무악당'보다 '무오당'이 듣기에 자연스럽다. 앞으로 ‘무오당’으로 부르려 하니 그리 아시라!(글 사진 / 발행인 이명재)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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