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허인범 묘소에 다녀왔습니다(8월 27일). 후배인 허인범의 이름 앞에 '고(故)' 자를 붙여야 한다는 게 슬펐습니다. 인범은 지금 부산추모공원에 누워있습니다.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방대한 넓이의 추모 공간은 '공원'이란 단어를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교통의 편리함도 여기에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톨게이트와 접해 있어서 찾기가 쉬웠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부산종합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접근성이 매우 좋았습니다. 배산임수의 양지바른 곳, 따스함이 피어올랐습니다.

나이 드신 어른이나 선배들 장례식엔 자주 참석하는 편입니다. 교인들이 세상을 뜰 땐 장례를 집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배의 장례식을 보는 것은 드문 편입니다. 후배 허인범의 묘지를 찾아가는 마음이 무척 착잡했습니다.

장례식장이 아닌 묘지로 찾아가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인범이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이렇게 빨리 가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장례식이 끝난 뒤 알게 되었으니까요.

꼭 가봐야 할 장례식이지만 당사자가 고인일 때 연락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나 이 세상을 노닐다가 훌쩍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고인의 묘소에는 공교롭게도 그의 선배들만 참석한 셈이 되었습니다. 묘소 참배가 평일에 잡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은퇴한 사람들 중심으로 진용이 짜인 탓일 것입니다. 인범이와 동지적 유대뿐 아니라 정적(情的) 끈이 단단한 선배들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에서 세 사람(김교빈 김순희 성현숙), 김천에서 우리 부부 그리고 부산에 터를 잡은 김남준 형 이렇게 여섯 명이 참배를 했습니다.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허인범의 타계는 선배인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기장군에 위치해 있는 부산추모공원엔 두 갈래로 나뉘에 도착했습니다. 김순희 성현숙 두 선생은 부산종합터미널에 내려 대중교통 편을 이용해서 갔구요, 김남준 김교빈 형은 병원에서 또 터미널에서 제 차를 타고 함께 갔습니다.

병원 말이 나왔으니 짧게라도 상황설명을 해야겠습니다. 그날 남준형은 운신하기가 좀 버거운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신을 맞는 날이었거든요. 오후 2시 백신 2차 접종, 오후 3시 30분 추모공원 묘소 참배. 별일 없으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정상입니다.

후배의 마지막 가는 길도 못 봤는데 가 보는 게 도리라고 했습니다. 가는 도중 부산종합터미널에 들려 교빈형 태워서 가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었습니다. 20분 정도 늦었습니다. 추모공원 인범의 묘지에 도착하니 여성 세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순희 성현숙 선생과 노혜원 씨. 혜원 씨는 인범의 부인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고인의 무덤 앞에서 간단한 예를 표한 다음 고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모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인범과의 이별이 실감 나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날들….

야학의 노선을 놓고 논쟁하던 일, 노동운동으로 도피하면서 숨어 지내던 일, 사업 전선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이야기, 달동네에 방과후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돌보던 일, ‘다온’이라는 카페를 차려놓고 지역의 사람들을 섬긴 이야기 등등….

인범의 부인 혜원 씨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인범이 세상을 뜨기 직전 둘째 딸을 출가시켰다고 했습니다. 아빠로서 짐을 덜어야겠다며 급히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리지 않고 가족 중심으로 예식을 치렀다는 말에 일말을 서운함이 일었습니다. 

인범이 숨을 거두기 전 열흘 정도는 고통이 너무 심해 환자도 가족들도 무척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혜원 씨는 눈물을 비쳤습니다. 인범 씨를 대신해 녹지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하고 싶으니 꼭 연락을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연(緣)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근처 음식점에 가서 뒤풀이 겸 식사라도 했을 것입니다. 부산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낮 4인, 오후 6시 이후로는 2인 이상 모일 수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산추모공원을 내려와 헤어져야 했습니다.

김교빈 김순희 성현숙 선생은 혜원 씨 차를 타고 부산종합터미널로 향했고, 나는 남준 형과 함께 부산의 형 집으로 향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명심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