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평소에 기회가 되면 미국 영화에 나오는 환상적인 미국 특유의 저택(邸宅)을 한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보통 미국의 가정집이 넓고 크기는 해도 대개 목재위주로 지은 집이어서 육중하거나 웅장한 멋을 지닌 저택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을 인솔하여 미국문화탐방을 하면서 테네시 주,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옛 저택을 방문하며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저택기념관에는 《그레이스랜드(Grace Land)》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 규모의 방대함과 치밀하게 가꾸고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저택을 보면서 과연 ‘락큰롤’(Rock'n Roll: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일어난 대중음악의 한 주류를 이룬 연주스타일) 황제의 저택답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그는 그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던 1977년 여름, 약물중독으로 횡사(橫死)하였는데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던 1997년에는 한 주간을 '엘비스의 날'로 선포하여 세계에 퍼져 있는 550여개나 되는 ‘프레슬리’의 팬클럽(Fan Club)의 대표들이 멤피스에 모여서 무도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기념 마라톤 대회도 개최하였으며 한 개에 120달러나 호가(呼價)하는 기념배지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또 이 기간 중에 있었던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기념 촛불행진에는 2만 여명이나 되는 군중이 참가하였다 하니 그의 추모의 열기는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가 묻혀 있는 이 기념관 저택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연간 일백만 명을 헤아리며 그 연간수입만도 수천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그레이스랜드》의 관광안내소 매표소 옆에 별도로 마련된 사설 비행장에는 그가 살아생전에 타고 다니던 크고 작은 자가용 비행기 서너 대가 전시되어 있는데 기내에 들어가 보면 ‘프레슬리’가 쓰던 찻잔이며 술병 외에 잔잔한 주머니 살림과 그의 손끝에 돌던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그의 생존당시의 현장감을 여실히 만끽할 수가 있다.

당시 흑인의 전유물인 '불루스(Blues)'를 '컨트리 뮤직'스타일로 불러 ‘락큰롤’의 새 지평을 개척한 ‘프레슬리’는 달콤한 특유의 목소리와 선정적(煽情的)인 몸짓으로 남성미를 물씬 풍겨 여자들의 우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기념관 《그레이스랜드》에는 수없이 많은 실물크기의 입체 사진과 수천 장에 이르는 그의 음악 앨범이 수십 개의 방을 장식하고 있으며 그가 살아생전에 받은 트로피며 상장이며 그가 입었던 수많은 의상과 그가 사용하던 집기 등도 너무 자연스럽게 진열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프레슬리’의 체취를 느끼게 해 준다.

《그레이스랜드》 관광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여 안내요원의 통제에 따라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구경을 하자면 두어 시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그의 집을 한 바퀴 둘러 볼 수 있게 된다. 그의 웅장한 저택의 후문 옆에 위치한 그의 조그마한 무덤을 끝으로 그의 저택관광은 끝이 나게 된다. 그런데 그의 무덤은 그의 명성에 비하여 초라하다 할 만큼 평범하게 꾸며져 있었다.

‘프레슬리’의 저택 《그레이스랜드》를 뒤로 하고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미국의 대저택을 구경한 셈이다. 프레슬리가 겨우 42년의 짧은 생애(1935-1977)를 화려하게 살면서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프레슬리’의 저택은 사치스러울 만큼 호화스러웠으나 그 눈부신 화려함 뒤에는 왠지 허전한 공허가 맴돌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유한성을 확인하면서 느껴지는 허전함인지도 모른다. 그가 살아생전 조물주를 모른 채, 죽어 누워있는 그의 저택은 그 이름 《그레이스랜드(Grace Land)》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더 이상 "은혜의 동산"도 "은총의 대지"도 아니었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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