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교회를 섬기는 분들에게는 그 직함에 ‘사’字가 붙는다. 목사, 권사, 집사의 직책에서 ‘목사’는 ‘牧師’로 표기하고 ‘권사’는 ‘勸士’로 쓰며 ‘집사’는 ‘執事’로 표기가 된다. 그러니까 세 가지 직함에 붙는 ‘사’字가 ‘스승 사(師)’, ‘선비 사(士)’, ‘일 사(事)’로 제 각각이다.

우리 사회의 식자(識者)들 중에는 ‘권사“에 대한 한자 표기는 ’勸師‘가 맞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최근까지 ‘勸師’로 알고 있었는데 연전에 《성경한자용어사전》을 편찬하면서 ’勸士‘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직책에 따라 달라지는 이 세 가지 글자의 차이는 무엇인지 더듬어보고자 한다.

우리사회의 통념상 이 세 글자의 ‘사(師, 士, 事)’字가 붙는 직업은 모두 상당한 권위와 전문성을 가진 직책이다. 예컨대, 의사(醫師)나 약사(藥師)가 그렇고, 박사(博士)와 변호사(辯護士)가 그러하며, 검사(檢事)와 판사(判事)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각각에 붙어 다니는 ‘사’字의 의미상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먼저 ‘스승 사(師)’는 《언덕 부(阜)+두를 잡(帀)》의 합성어이다. 이때 ‘두를 잡(帀)’은 ‘장수의 지휘용 깃발[巾]’이라는 뜻이므로 ‘언덕에서 휘날리는 장수의 깃발’이니 ’군사의 편대(編隊)‘를 뜻하는 글자였는데 ’스승‘의 뜻으로 전용되었다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군대편성의 단위인 ’사단(師團)‘이라는 명칭에 ’스승 사(師)‘가 들어가 있어 “군사 편대”를 뜻하는 그 원어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서 ’스승 사(師)’가 붙는 직책은 업무의 특성상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대부분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엿볼 수가 있다. 의사(醫師), 목사(牧師), 교사(敎師), 약사(藥師), 간호사(看護師), 미용사(美容師), 이발사(理髮師), 사진사(寫眞師), 사육사(飼育師), 마술사(魔術師), 정원사(庭園師)‘ 등의 직함을 살펴보면 “늘 서성거리며 왔다 갔다”하면서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다음으로 ‘일 사(事)’字가 붙는 직업을 생각해 보자. 일정한 직임(職任)을 맡은 ‘임명직’으로 법정에서 재판업무를 다루는 판사(判事)와 검사(檢事)가 있다. 또 법인(法人)에서 일을 맡은 사람으로 ‘이사(理事)’나 ‘감사(監事)’가 있고, 한 개의 도(道)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도지사(道知事)’가 있다. ‘도지사’도 ‘임명직’이었는데 지방자치제 이후 ‘선거제’가 되었다. 이렇듯 ‘일 사(事)‘가 붙는 판사, 검사, 도지사 같은 사람들은 회전의자에 앉아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면서 사건이나 업무를 감독하고 지휘하거나 지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같은 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도 국가가 일정한 조건이나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만 부여하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선비 사(士)‘가 붙는다. 변호사(辯護士), 속기사(速記士), 변리사(辨理士), 감정평가사(鑑定評價士), 회계사(會計士)가 있는가 하면 그 외에도 자격증을 소지한 기관사(機關士), 장학사(獎學士), 운전사(運轉士), 항해사(航海士), 세무사(稅務士), 관세사(關稅士), 조종사(操縱士) 등도 ’선비 士’의 주인공들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師’는 스승, 의술 및 기타 전문적인 직업에 쓰이고 '士’는 주로 ‘공인된 자격증’을 가진 전문기능직에 사용되며 '事'는 ‘다스린다’, ‘일을 맡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제목으로 선택한 《권사(勸士)와 집사(執事)》의 경우는 그 기준이 사회적 통념이 아닌 《교회》라는 특수한 공동체에 국한하여 그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사(勸士)’의 직함은 외국에는 없는 한국개신교 고유의 직분이다. 그래서 ‘권사’를 영어로 번역할 때도 ‘kwon-sa'로 표기한다. ’권사‘에 쓰이는 ’선비 사(士)‘는 박사(博士)나 변호사(辯護士)같은 높은 권위의 직책을 뜻함이 아니라, 목회자를 도와서 교인을 심방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환자를 문병하는 등 ’전문기능‘의 직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맥락에서 ’집사(執事)’역시 목사, 장로, 권사를 도와서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봉사하는 직책이다. ‘집사’는 영어로 ‘디이큰(deacon)'이라고 하는데 이는 헬라어로 ’봉사자/심부름꾼‘을 뜻하는 ’디아코노스(diaconos)‘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집사‘는 ’심부름하는 사람‘이니 곧 ’발품을 파는 자‘요, ’일[事]에 파묻혀 봉사하는 직분‘이라 해서 크게 벗어나는 해석이 아닐 듯하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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