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본 신문 편집고문)

오래전 취재차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한 적 있습니다. 남미의 쿠바를 거쳐 도착한 밴쿠버는 선진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곳의 한국인들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한인 관광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밴쿠버에서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외로움입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두고 온 고국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저 앞에 펼쳐져 있는 태평양을 건너면 바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고 그곳엔....“

김 씨라고 성을 밝힌 가이드는 유난히 비가 많은 밴쿠버의 날씨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밴쿠버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센티멘탈해져서, 화창한 날에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제각각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쿠바 아바나의 사람들은 비누 한 장, 치약 한 통에 목말라 하고 있지만 적어도 날씨 때문에 자살을 하지는 않지. 
김 씨에게 물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무엇을 합니까? 

“집에 가서 빈대떡을 부쳐 먹습니다. 비 오는 날에 빈대떡이라고 운치 있다 생각지는 마세요.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당신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야. 비 오는 날에 빈대떡을 생각한다면 당신 혈관에 가난과 억압의 애환 속에 살던 조선 민중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지.

빈대떡은 ‘빈자(貧者)떡’,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부잣집이나 세도가의 집에서 빈자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과 거렁뱅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빈자’가 세월이 흐르면서 ‘빈대’로 변했고 요즘의 ‘빈대떡’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유래가 어떻든 빈대떡은 정감 있는 음식임이 분명합니다. 빈대떡 몇 장 부쳐놓고 창밖의 비를 바라보면서 작은 만족감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서늘한 동동주라도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밴쿠버의 사람들이 이런 맛을 알았다면 자신들의 센티멘탈리즘을 자살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도 해 봅니다.

약 한달 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장마철이 시작됐습니다. 빈대떡 생각이 자주 날 것 같습니다.
녹두를 갈아 넣고 식용유나 돼지기름을 듬뿍듬뿍 발라가며 두텁게 지져내는 빈대떡에는 인심 후함이 있습니다. 그 넉넉함을 나누는 손길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밤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 몇 잔 함께 할 수 있는 벗을 기다립니다(이창재 / 본 신문 편집고문).

이창재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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