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facebook

또 추석 명절이 돌아왔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추석입니다만 올 추석은 의미가 좀 다르게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설과 함께 추석 명절이 마음 속에 포근하게 자리합니다. 옛날로 옛날로 저를 돌아가게 합니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는 얘기지요. 과거는 그 기간까지 제한받지 않습니다. 엄마가 저를 업고 시장 가던 생각도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생각이 미치는 최대치까지 확장됩니다. 사고(思考)의 촉수는 어린 시절에 더 자주 맞춰진다는 얘기지요,

이유가 뭘까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순수하고 해맑은 세계를 좋아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린 시절의 동심은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도 따뜻한 향기처럼 저를 감쌀 때가 많습니다. 삶의 에너지가 됩니다.

사위(四圍)가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의 산골 마을, 그곳을 놀이터 삼아 함께 뛰놀던 친구들... . 팍팍하게 돌아가는 세태에도 모든 게 선(善)이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묵은 생각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문학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지요.

추석은 저에게 설 명절과 함께 때 묻은 마음을 씻어내기에 좋은 기회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자매들, 백발이 성성한 분들과 나누는 대화는 반백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 옛적 이야기가 됩니다. 제게는 묵은 때를 벗길 수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올 추석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 같군요. 슬픈 예감이 듭니다. 현 정국(政局)이 추석 분위기를 압도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그 반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진보-보수, 여-야 어느 쪽에 책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인들, 부풀리기 좋아하는 언론에게 책임의 일단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민들에게도 책임의 많은 부분이 귀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양보, 이해에 기초한 대화가 사라진 사회엔 악(惡)만 진동하기 마련입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式)의 동해보복법은 국가의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입니다. 가족들 가지고 물어뜯는 사회는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나 필요한 것인데, 지금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가족 중 특히 자녀 문제를 들춰내어 공격하는 것은 사람의 수준뿐 아니라 국가의 격(格)까지 떨어뜨립니다. 자식 문제는 누구에게나 민감하게 작용합니다. 얼마나 민감한 문제이냐 하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당사자들에게 더 매섭게 돌아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조국 청문회에서 자녀 문제를 가지고 도 넘는 공격을 해댄 장 모 의원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또 제1야당 대표라고 하는 나 모 의원은 어떻습니까.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하는 말, "자식 가진 사람이 남의 자식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니다"라는 경구는 진리에 가깝습니다.

다시 한 번 추석을 생각합니다. 추석 명절은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모처럼 모이는 날입니다. 모일 때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집안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집안도 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장점은 덮어두고 단점만 들춰내 대화의 소재로 삼기 때문입니다.

올 추석엔 싸움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조국을 놓고 침 튀기는 논쟁이 펼쳐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정치의식이 만만치 않습니다.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빈부귀천, 학력고하 불문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분명한 정치적 입장들을 갖고 있습니다.

부산 큰댁에 모이는 저희 형제들도 정치적 대화에는 반으로 쫙 갈립니다. 이번에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 가급적 대화에서 빠지려 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들춰내고 동심을 그리워하고 마음을 씻고 싶은 추석이 이번에 제 몫을 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잔뜩 찌푸린 하늘이 현 세태를 반영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번 추석 날 둥그런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밝은 해와 함께 둥근 달도 소망의 상징입니다. 달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일그러진 보름달이 될 것 같다는 일기예보입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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