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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글쓰기(23) - 감정이 배제된 글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 | 승인 2019.06.19 10:24

앞 회(22회)에 설명한 글의 품격과도 관계되는 내용이다. 말도 그렇듯이 감정적인 글을 쓸 때가 있다. 아니,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감정을 깔고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피해야 함은 당연하다.

글은 객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큰 주제, 즉 사랑 평화 진리 봉사 등은 실천 방법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의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객관화의 충분조건을 갖고 있다 할 것이다.

가끔 다음과 같은 글을 접한다. 개인의 특수 상황을 일반화시키려 드는 글들 말이다. 감정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나는 옳고 상대는 '죽일 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자신의 맹점이 감정으로 분출되어 상대방을 향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옳음이 증명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정(正)의 위치에 고정시켜 놓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인신공격 수준이다. 이런 글쓰기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에서도 흔히 드러나지만 단체 나아가 국가의 제도가 그 대상이 확대되기도 한다.

요즘 SNS의 발달로 글 쓸 기회가 많아졌다. 글을 직접 본문으로 올릴 수도 있고 또 댓글로 올려진 본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다. 개방적인 데다 익명성까지 보장되다 보니 감정적인 글이 범람하고 있다. 인격 살인은 다반사이고 심지어 듣기 거북한 욕설까지 횡행한다.

글의 품격은 글의 예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글과 말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혼자 읽고 버릴 글이 아니라면 이 점을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잦은 감정 발산은 그것 이상의 후회를 동반하기 쉽다. 감동은 폭우로 찾아오지 않고 가랑비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는.

글의 예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결론을 반복하지만 감정적 글쓰기를 피하고 이성적인 글쓰기 훈련을 하라. 개인의 주관이 많이 드러나는 수필도 마찬가지다. 이성적인 글은 논리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독자가 감동을 받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말한다.

SNS의 대중화로 길고 짧은 글 쓸 기회가 많아졌다. 다른 사람이 쓴 글 볼 기회도 많아졌다. 죽 훑어보면서 감동적인 글, 공감하는 글에 나는 댓글을 종종 단다.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댓글들은 비교적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각양각색의 내용들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SNS를 통해 접하는 글에 대해 나 나름대로 몇 개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실명으로 올리지 않는 댓글은 무시한다. 책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런 댓글은 감정이 실려 있는 것이 대분이다. 무시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돈키호테식 댓글도 나는 무시한다. 이런 글은 읽지 않는데, 개중 간혹 읽는 것도 반응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식'이라고 했는데, 아무 근거도 없이 염장 지르는 글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글은 배우면서 쓰는 것이니까.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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