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선생 페이스북에서

아무도 모르는 나의 비밀 장소. 헛간채 뒤 커다란 밤나무에 기대어 수북이 쌓아 논 보릿짚더미에 굴을 파서 방처럼 만들어 놓은 곳. 숨바꼭질할 때도 이곳에 와서 숨으면 절대 들키지 않는 아주 좋은 곳이다.

누렁이 녀석이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니는 통에 쉽게 들켜 이곳을 만들었다. 누렁이도 같이 들어가 숨으니 이곳을 만든 후는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오늘 낮에 이쁜 애랑 개울에서 멱 감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소풀을 안 베어와 저녁 소죽을 못 끓여줘 엄마한테 혼이 나 쫓겨났다. 다른 때 같음 엄마 화가 풀리길 굴뚝 뒤에 앉아 기다리다가 살금살금 기어 방으로 들어갔을 텐데 오늘은 비밀 방으로 가서 숨었다.

저녁밥도 못 먹고 쫓겨나서 혼자 한참을 누워 있으니 배가 고프다. 살며시 나와 우리 집으로 가려 하는데 옆집 문이 열리더니 이쁜 애가 쪼르르 달려 나와 울타리 밑에 와 치마를 훌러덩 걷어 부치곤 쪼그리고 앉아 쏴~ 하고 오줌을 눈다. 

어둑어둑 날은 저물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쁜 애의 궁뎅이를 보니 가슴이 마구 떨려 온다. 기분이 묘하다.

다시 들어가려 일어서는 이쁜 애를 살며시 부르니 깜짝 놀라며 돌아보더니 나인 걸 알곤 울타리 개구멍을 빠져서 나온다. 비밀 방을 구경시켜 주니 참 좋은데 어둡다며 집에 가 초를 가져와 불을 밝혔다. 

환한 비밀의 방은 아늑하고 참 좋아졌다. 깔깔대며 서울에 있는 테레비며, 전깃불, 전차들... . 상상도 못할 아주 신기한 이야기에 너무나 신이 난다.

즐거운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나니 배가 고프다. 고개 넘어 은자네 밭에 노랗게 익은 참외가 생각이 나 서리하러 가자고 이쁜 애 손을 잡고 고개를 넘었다. 원두막 안에 희미한 호야 등 불빛이 흘러나오고 은자 아버진 주무시는지 조용하다. 

살금살금 발소릴 죽여 기어들어 가 넌닝구 앞자락에 몇 알을 따서 후다닥 고갯마루로 달려와 이쁜 애랑 나눠 먹는 참외 맛이 너무나 좋고 즐겁다.

배도 부르니 밤하늘의 고운 별도 보며 푸른 하늘 은하수~ 노래도 하고... .

마을 쪽에 불빛이 솟아오른다. 누구네 집에 불났나 보다. 뛰어왔다. 불여~, 불여~ ! 소리를 치며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양동이를 들고 바삐 뛴다. 나도 따라 뛰어가 보니... .

아뿔싸... 우리 집 뒤 헛간에 불이 붙어 벌겋게 타오른다.

아~~  큰일났다. 비밀 방에 촛불을 켜놓은 게 보릿짚에 옮겨 붙어 헛간까지 태우고 있는 것이다. 마을 분들은 안채 지붕에 올라가 초가집 위에 멍석을 깔고는 그 위에 물을 붓기만 하고, 활활 타고 있는 헛간채는 바라만 보고들 있다. 홀라당 헛간이며, 뒷간까지 모조리 타고서야 불이 꺼졌다.

동네사람들은 안채에 안 붙은 게 천만다행이라 하시며 돌아가고 이쁜 애랑 나는 오돌오돌 떨면서 큰일났다만 연발하고... .

이튿날, 엄마의 추궁에 사실대로 말하고는 부지깽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또 쫓겨났다.

정윤영  daum.net

정윤영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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