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선생 페이스북에서

집으로 가려는데 선생님이 부르신다. 이거 네가 쓴 거 맞냐며 지난 방학 때 글짓기 과제물을 손에 들고 물으신다. 친구들과 발가벗고 물놀이한 내용인데...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내일까지 다시 한 번 아무 내용이나 써서 가져 오라신다. 

발가벗고 물놀이한 게 잘못인가 싶어 호롱불 밑에서 끙끙대며 동생들과 참깨 밭에서 맹충이 벌레 잡던 그 모습을 적어서 또 혼날까 싶어 누나에게 보여줬더니 잘 썼다 하기에 그 이튿날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다. 

며칠 후, 교무실로 오라는 선생님의 호출에 뭐 잘못한 거 없나 생각해 보며 떨리는 맘으로 교무실로 가니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이쁘신 여선생님께 "이녀석입니다" 하며 나를 잡아 끄신다. 

"어머나!" 놀란 얼굴로 이쁜 선생님이 바라보시더니 장터 옷가게로 데리고 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쁜 옷을 골라 나의 덕지덕지 꿰맨 누더기 옷을 벗기더니 입혀 주신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 또 이끌려 신발가게에 가서는 까만 운동화를 골라 발 앞에 놓고는 신으라 하신다. 왜 이러시나? 이쁜 선생님이 무서워진다. 팔 다리가 덜덜덜 떨려 온다. 

겁먹은 눈만 껌뻑이고 있으니 곱게 웃으시면서 며칠 후, 교육청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는데 거기 가서 글짓기 잘 하라고 사 주는 거니 신으라면서 몇 번을 때우고 꿰맨 타이야표 검정고무신을 벗기고 운동화를 신겨 주신다. 

평생에 처음 신어 보는 운동화에 부잣집 아들 기홍이 옷보다도 더 좋은 옷. 두근두근 나의 가슴은 떨려오고 정말 내껀가~ 몇 번을 되뇌어 본다. 돌아오는 길에 흙먼지에 더러워질까 싶어 장터를 벗어나서는 새 옷을 벗고 누더기 옷을 입으니 멀리서 이쁜 선생님이 내 모습을 보곤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으신다. 

드디어 글짓기에 나가는 날. 멋진 새 옷에 운동화를 신고 나서니 형아 동생들이 너무나 부러워한다. 풀섶 이슬에 젖을라~ 흙에 묻을라~ 조심조심 학교를 갔다. 

4학년 여자애랑 이쁜 선생님이랑 뻐스를 타고 교육청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타보는 뻐스가 출발해 미루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니 첨엔 너무나 신이 났으나 미루나무가 눈 속으로 달려드는 것 같더니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빙빙 돈다.

매스껍다. 아침에 먹은 보리밥을 기어코 차 바닥에 토해 내고 말았다 새 옷도 운동화도 토해낸 보리밥과 된장찌게로 얼룩이 졌다. 점점 더 어지럽고 힘이 빠진다. 죽을 것만 같다 이쁜 선생님이 꼭 안아서는 정신 차리라며 눈물을 흘리시는 게 어슴푸레 보이고는 꿈을 꾼다. 

고운 냄새가 풍겨온다. 무슨 냄새일까. 아, 내가 좋아하는 찔레꽃 향기다. 참 좋다. 얼마를 알 수 없는 곳을 날아 다녔다. 멀리서 날 부르는 엄마의 음성. 

살며시 눈을 떴다. 희미하게 눈에 어리는 이쁜 선생님. 눈물을 철철 흘리시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뜬 나를 보시고는 큰 소리로 엉엉 우시면서 살았구나 하시면서 꼭 안아 주신다. 찔레꽃 고운 향이 물씬 풍기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글짓기대회에 참석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서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30리 길을 되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도 멀기만 한지... .

4학년 여자애는 그 후 나만 보면 벌레를 본 것 마냥 외면을 하고 30리 버스 길에 죽을 뻔한 촌놈이라고 소문만 나고... . 이쁜 선생님의 찔레꽃 향수만이 내 가슴에 깊이 자리하였다.

정윤영  daum.net

정윤영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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