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시사평론가)

나는 때때로 진보라는 것이, 어느 사회의 혁신과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집단이나 세력, 또는 그들의 가치라기 보다는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시간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을 한다. 

계단의 단면을 잘라보면, 수평으로 30cm 정도 가다가 수직으로 20cm 정도 올라간다.  우리가 운동을 배울 때에도 꾸준히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슬럼프처럼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기간이 일정시간 지난 후에야 어느 날 비로소 예전과 달리 확연히 향상된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최순실이 우리 국민들에게 미친 좋은 영향이 있다면, 지난 2년간의 뉴스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확연히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많은 국민이 정치학 전문학사 정도의 학력을 갖춘 것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뉴스를 통해 정치공부를 해야 할 만큼 상황은 드라마틱했었다. 최고 권력과 그에 붙좇는 재벌, 정당, 언론, 사법 및 정부의 각 권력기관 등의 숨겨진 단면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인지 그 메카니즘에 대해서  얼개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권력은 안주하는 순간 부패한다. 진보가 현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하는 순간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안희정은 중도를 넘어 일부 보수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이 있었고, 이재명은 맹렬히 찌르는 진보의 고유한 속성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민주당의 빛나는 차기주자였지만, 스스로 안주하고 한눈을 판 사이에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한번 퇴색된 진보는 돌아오기 어렵다. 

나아가야 할 시점에는 앞으로 좀 나아가줘야 하는 것인데, 다들 자기욕심에 현재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순간, 보전할 "보(保)", 지킬 "수(守)" 자를 써서 보수가 되는 것이다. 보수는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내용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하고, 혹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서 아니 감만 못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돌다리 두드리는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냥 현재의 기득권에 주저앉아서 시간을 뭉개자는 게 보수는 아닐 것이다.

새로 만들고, 고쳐야 할 법들이 날이 갈수록 쌓여 가는데,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현 정부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막말하는 홍준표를 자유한국당에 재 등판 시켜야 할 판이다. 김병준이 잘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유한국당, 민주당 둘 다 현 기득권에 주저앉아 찰나를 놓쳐버릴까 봐 하는 걱정이다. 

진보의 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10년이 넘게 기다린 시간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노회찬 의원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도, 위안부 할머니들 중 많은 분들도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보수정치인들을 핑계 삼아,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닐까?  계엄령 문건으로 치고받는 국방부와 기무사를 보고 있으면,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진흙탕 싸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진보의 찰나, 기득권을 즐기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김병희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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