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66) - 항공사 오너 일가 수난시대

항공사 오너 일가의 갑질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사진 세계일보)

내가 어릴 땐 비행기 한 번 타는 것은 출세와 바로 통하는 말이었다.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극소수'만이 타고 누리는 호사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꿈을 ‘비행기 타기’로 적어 내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은 취항하는 여행사가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예전에는 대한항공(KAL) 하나밖에 없었다. 저렇게 귀한 비행기를 거느리고 있는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분명 우리와는 많이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국내 항공사만 해도 KAL에 더해 아시아나항공이 있다. 진에어, 제주항공, 에어부산, 에어포항 등 저가 항공사까지 합하면 그 수가 제법 된다. 여기에 국내에 취항하는 외국 여행사까지 합하면 두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승객도 다변화되었다. 비행기 못 타본 사람보다 타 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사는 농촌에도 대부분 비행기로 제주도는 한두 번 다녀왔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도 안방 드나들듯 한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졌다는 얘기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생활이 풍족해지면 따라서 의식도 고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환경은 눈에 띄게 변했는데, 생각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옛것에 묶어 있는 격이다.

일반 국민보다 이른바 지도층 즉 상류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더 조심하고 처신을 잘 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회 지도층은 책임 의식을 더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의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시대상황은 21세기인데, 의식구조는 여전히 20세기 초중반에 머물러 있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변화는 발전을 전제로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노예는 인격이 없었다. 같은 말을 할 뿐이지 가금(家禽)과 같았다. 노예의 수로 재산의 많고 적음을 가늠할 정도였다. 사고 파는 일도 다반사였다. 고대 로마는 인구의 25% 정도가 노예였다는 기록도 있다.

봉건 왕조시대 노비도 이와 비슷했다. 조선시대의 노비도 매매 대상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때 노비의 가격은 오승포 150 필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한도 여전히 주인이 갖고 있었다.

개화기 이후 일제 강점기 땐 머슴이 있었다. 이들의 신분은 평민이었지만 조락한 양반도 가끔 있었다고 한다. 옳든 그르든 주인의 의사에 반(反)해서 행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이들의 의무였다.

주인의 험한 말을 다 들어야 했고, 때리면 맞아야 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만 했다. 이것이 머슴의 운명이었다. 항공회사 오너의 가족들을 이 때의 주인 수준으로 보아야 할까.

세상이 바뀌었다. 평등이 강조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돈 앞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던 시대는 지났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지금은 인격을 생각한다.

고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횡포를 부리는 것, 낙하산으로 자녀들을 임원으로 앉히는 일 등은 국민의 시각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의식이 지체(遲滯)되어 있는 단적인 예다.

지금까지 항공사들을 포함한 재벌 기업들은 너무 쉽게 사업을 해 왔다. 군사 정권기에는 그래서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경유착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 환경이 많이 변했다.

법의 규제가 과거보다 강화되었다고 해서, 권리 쟁취를 위해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이익이 호시절보다 못 하다고 해서 기업주가 '폐쇄' 운운해서는 안 된다.

항공사가 내 것이 아니라 회사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런 인식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할 때다.

'항공회사 오너 가족 수난시대'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수난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성격이 짙다.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때 이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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