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그리츠 지음, 이순희 옮기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시장의 원리는 그 자체의 역할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한 규제나 관리가 없어도 '스스로' 작동할 것이라는 통념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그러한 통념이 얼마나 현실의 상황과 괴리된 것인지,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시장 왜곡이나 규제 완화 등 경제적인 상황에 영향을 미쳐 불평등을 양산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불평등의 양산은 결코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다수 구성원들의 희생 위에 상위계층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시장 원리를 구성하고 일부 소수자들만 성장의 혜택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스티글리츠는 이러한 시장왜곡 현상을 윤리나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원리의 가장 큰 특징인 '효율성'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즉,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된 시장은 다름 아닌 시장원리의 핵심인 효율성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 정책이 불평등한 사회현상을 양산하는 한 가지 예로 미국의 에탄올 보조금 정책을 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옥수수에서 얻은 에탄올을 대체원료로 만들어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해마다 막대한 양의 보조금을 지급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용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많은 에탄올 생산 공장이 파산하기까지 했다.

위와 같은 미국 정부의 에탄올 보조금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옥수수 생산농들을 지원하는 것처러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보조금의 주요하고도 직접적인 수혜자는 초국적 기업인 아처 대니엘스 미들랜드였고, 이 기업의 경영진들은 정당에 넉넉한 기부금을 내 놓았기 때문에 하원의원들이 에탄올 보조금 정책을 수정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에탄올 보조금 정책은 피상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듯 보이는 정부 정책이 어떻게 소수의 상위층들에게 더 유리한 게임의 규칙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매우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저자의 논지는 우리 사회의 상황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과 무관하게 시장은 나름의 원리를 가지고 작동한다고 믿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불평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혹은 공정함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도덕적 당위 내지는 정의론의 관점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의 원리가 잘 발현될 수 있도록 공정한 게임의 규칙과 필요한 기본적인 규제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배제하고 상정할 수 없다. 정부 정책 및 국회가 만드는 법률은 외견상 중립적이고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현실 속에서 빌현될 때에는 어떤 집단에게는 혜택을 주는 반면 어떤 집단에게는 암묵적인 희생을 유도하게 된다. 

또한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는 사회 구성원 간 신뢰 내지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이 중요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통념이 팽배하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하여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특정한 법률이나 정치적 경제적 제도가 일부 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 구성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적 결속력을 증가시켜 투자 의욕을 증진시키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효율성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자유경쟁으로 대별되는 시장원리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감독, 관리하는 정치적 결단 내지는 제도의 설계가 뒷받침될 수 있어야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성공적으로 시장원리가 구현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이 증진된 사회에서는 모두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이를 잘 관리하는 현명한 정부의 손이 배후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 전반에 이익이 되는 정책 대신 특정 집단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공공정책의 탈을 쓰고 지속적으로 양산된다면, 사회적으로 진정하게 필요한 수요처에 투입되어야 할 정부 세입은 기실 사회 전반의 복지 향상이 아닌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은 결코 상반되는 가치가 아니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정부 정책과 그러한 정책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믿음 내지는 신뢰가 결합된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함과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김선화 대전지법 판사, 서울대학교 법학과 석사과정,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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