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역사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그 차이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조건과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존재가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은 역사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이 그것이다. 역사를 엮어 가는 것이 소수의 영웅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영웅사관이다. 여기에 비해 진정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다수의 민중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민중사관이다.

혹자는 영웅사관을 우파, 민중사관을 좌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역사를 객관적이고 중립 가치적 학문으로 본다면 절대 다수 위주의 민중사관이 현실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는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카(E. H. Carr)는 그것을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비춰보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비판적 시각이 결여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홍보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지만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국정화를 앞장서서 이끈 사람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공적 성격의 역사를 사적 영역에 가두려 하다가 권력까지 날아간 격이다.

정권이 바뀌어 국정화 시도는 폐기되었지만 쌍수를 들고 지지하던 무리들은 아직도 건재한다. 석고대죄(席藁待罪)해햐 할 사람들이 말이다. 그들은 국정화를 반대한 사람들을 좌파로 매도하며 북한과 연결 지으려 했다. 역사를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맹추 같은 짓이다.

비판이 곧 좌파라고 규정하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은 보수주의, 심지어 극우주의에도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면 도그마가 판을 치게 된다. 이런 사회는 전체주의로 흐르기 쉽다. 히틀러의 나찌당과 뭇솔리니의 파시즘처럼.

우리 지역 한 정치인의 역사관이 회자되고 있다. 일본 때문에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났다는 식의 발언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런 역사 인식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문제를 삼기보다 그가 살아 온 역정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의 출신은 서민이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볼 때 그가 서민적 삶을 살아왔느냐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 지향의 사람이었고, 권력에 발맞추며 호흡을 같이 해왔으니 말이다.

국립대 사대 졸업-중등학교 교사-정보기관 공채(직원-과장-국장)-정무직 부지사-국회의원(원내대변인-정보위원장-사무총장-최고위원)-도지사 후보... 

누구는 그를 관운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운에만 맡기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처럼 차곡차곡 승진한 그의 직무에서 치열한 출세지향주의의 속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독한 마음을 배제하면 그를 정확하게 판단해내기 어렵다.

그는 스스로 지조 있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선전한다. 좋다. 그렇다 치자. 과연 누구를 위한 지조이며 지킨 약속인가. 그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 되었을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인, 자기 당 기껏해야 자신이 속한 진영을 위한 지조고 약속 아니었나.

국정원 등의 정보기관은 계륵(鷄肋)과도 같았다.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할 국정원이 정권의 보위부대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국정원의 대대적 개혁이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 기관의 장(長)을 지낸 사람이 셋이나 감옥에 가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그 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이 사람이 몇 년 전 테러방지법을 발의해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여당이었고 야당 사람들이 그 법에 반대했다. 북한을 좋아하고 빨갱이를 두둔하기 위해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 법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유력한 도지사 후보인 그에겐 말도 안 되는 주장일 테지만 일군의 사람들이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볼 게 있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 보안 사범은 형법으로도 충분히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법이 어떻게 악용되어 왔는지 살펴보면 생각이 정리될 것이다. 이 법의 원조는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치안유지법, 얼마나 좋은 말인가? 치안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법! 그런데 이 법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되었다.

이것이 해방되자 반공법,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탈바꿈했다. 취지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국가를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들은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이 반대 세력, 즉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법적 장치로 활용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그의 정치력이 갈수록 난폭해짐을 느낀다. 그가 도지사가 될 때 몇 가지 염려거리가 없을 수 없다. 보수 내지 극우 세력의 눈높이에 맞춘 도정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치우친 도정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도지사는 도민 전체를 섬길 줄 알아야 자격이 있다.

지금 민주화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더 이상 성역이 없다. 또 남북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대가 몰려오고 있다. 혹시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그가 이러한 흐름 앞에 역류의 길을 밟아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정의와 진리 그리고 평화의 가치 앞에 나오는 이상 행동은 개성이 아니라 일탈이다.

자유한국당이 TK당으로 전락할까 걱정된다. 이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보수가 뭔지, 국민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건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역 정서에 의지하고 북풍이 불기를 바라고 진영논리에 몰입하면 승리해도 의미는 줄어든다.

그의 중국 속국론, 식민지 근대화론의 진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앞에서 그가 영웅사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 역정과 갖고 있는 사고(思考)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위하는 것은 구호로 그치면 안 된다. 정책으로 뒷받침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다.

다수의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이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영웅사관에 빠져있는 정치인을 환호하며 지지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오는 선거에 계급 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고 표를 행사할 필요가 있다. 투표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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