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의 꿈 - 4.27 남북정상회담에 붙여

손 잡은 문재인 대통령 - 김정은 위원장 (NEWSIS 사진)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이 꿈을 꾸었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이니까 1970년대 중반기 때쯤 되는 것 같다.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나서 몇 해 지난 뒤의 일이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갔다. 사방은 여명(黎明), 침침한 가운데 차창 밖으로 많은 물체들이 지나갔다. 전봇대, 영업용 택시, 자전거를 탄 사람, 괭이를 든 농부 등등... .

이상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얀 모시적삼에 검정 치마를 입고 나를 맞아 주시는 게 아닌가. 꿈을 깨니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너무 생생한 북한 방문 꿈이다.

오늘(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있는 날이다. 판문점에서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서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선언 그리고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날이다. 높은 장벽이 무너지는 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어내기 위해 첫발을 띄는 날이다. 죽음을 멀리 물리치고 생명을 보전(保全)하기로 약속하는 날이다.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부르는 날이다.

분단 이후 남북 정상이 만난 일이 몇 번 있었다. 1972년에 있었던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에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은 의미 있는 생산물이었다.

오늘 남북정상회담에서 과거 몇 가지 유의미한 선언을 뛰어 넘는 결과가 도출되기를 바란다. 가능하리라 본다. 전후 세대인 두 지도자, 구원(舊怨)에서 비교적 자유롭지 않은가.

어제 한 극우 학자의 글을 읽었다.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에게서 학자적 양심을 지운지 오래지만 불쾌감이 몰려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한일병탄에 도장 찍은 이완용을 옹호하고, 남북분단 하에 단정을 수립한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칭송했다. 여기 멈추지 않고 북한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되면 혈맹국가인 미국과 우방 일본과 손잡고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경제적으로 말하면 일제가 주장하던 식민지근대화론자요 민족적 정치적으로 말하면 반통일론자다.

남북통일이 이런 자들에게는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이들의 맥(脈)은 이렇다. 친일 세력-이승만 독재 옹위 세력-개발 독재 세력-기득권 세력. 이 세력에게 통일은 기득권 상실을 의미하지 않나.

그들이 갖은 저주를 쏟아내는 이유다. 나라를 김정은에게 통째로 갖다 바친다. 문재인 정권은 빨갱이 정권이다, 위장 평화 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6.13지자제 선거용이다 등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어쭙잖은 생각으로 내뱉는 선전 선동은 막아야 한다. 6.25 전쟁 직후에나 있을 법한 냉전의 마귀가 발호(跋扈)하고 있다.

소수의 무리가 아무리 훼방한다고 해도 지구는 돌아가고 시간은 흘러간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통일의 물꼬가 되기를 바란다. 5월로 잡혀있는 북미정상회담의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다.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이번 남북 회담을 북미회담의 가교 운운하면 북미회담이 주(主)이고 남북회담을 종(從)으로 생각하게 한다. 확언컨대 남북회담이 더 중요하다.

공산주의의 실험은 끝났다.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의 몰락이 그것을 증명한다. 중국의 국가 경영 체제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많이 수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김정은에게 갖다 바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 적용되는, 영원한 동맹국도 영원한 적국(敵國)도 없다는 말이 남북관계에만 예외일 수 없다.

오늘 회담에 거는 기대가 작지 않다. 무한경쟁의 국제 관계 하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넓지 않다. 남북통일이 유일하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강대국들이 통일에 인색한 이유도 여기 있다.

한 고등학생이 오래 전에 꿨던 북한 방문 꿈, 그것이 현실이 되면 좋겠다. 오늘 회담에서 통큰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보는 눈들이 살아 있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명재 / 본 신문 발행인)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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