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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면 수도리, 인현왕후길
김천iTV | 승인 2016.08.10 21:01

*** 인현왕후(仁顯王后)의 김천과의 인연 ***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장희빈(張禧嬪)의 계략으로

서인으로 강등되었을 때 3년간 머물며 복위를 기원한 곳이

바로 불영산(佛靈山, 수도산) 청암사(靑巖寺)다.

 

훗날 궁으로 돌아간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청암사(靑巖寺)에 서찰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구한말에는 궁녀들의 시주로 불사를 일으켰으며,

지금 가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인현왕후(仁顯王后)의 길"은 김천에서 3년을 보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역사적 현장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민초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참된 인품을 느낄 수 있고 자연(自然)이 주는 풍광(風光)은 눈을 즐겁게 한다.

 

** 인현왕후(仁顯王后) **

사랑과 권력에 희생된 비운의 왕비(王妃)인

인현왕후는(仁顯王后, 1667~1701)는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繼妃)로 본관은 여흥민씨이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때 폐서인 되었다가,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복위했다.

170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37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굴곡진 삶을 살다간 왕비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장희빈(張禧嬪)과 숙종(肅宗) 사이에

사랑과 권력에 희생(犧牲)된 비운의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자식을 낳지 못한 왕비였다.

유교적 이념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왕의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 왕비(王妃)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왕과 조정에서 부터

민초들까지 널리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김천iTV  gcnews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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