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 교수의 책 읽기 - '네 장르의 작품 꾸러미, 소설 <트러스트>의 진실

임재해(안동대 명예교수, 민속학자)

《네 장르의 작품 꾸러미, 소설 <트러스트>의 진실》

소설의 양식 가운데 특별한 것 중의 하나가 소설 속에 또 소설이 있는 액자소설이다. 액자소설에는 액자 바깥의 소설과 액자 안의 소설이 서로 관련되어 두 소설이 액자와 그림처럼 서로 포함하고 포함되는 관계를 이룬다. 에르난 디아스의 소설 <트러스트>는 액자소설 같으면서 액자소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겉이야기의 액자 안에 속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겉이야기는 따로 없고 여러 가지 속 이야기만 열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 소설과 자서전, 회고록, 일기 등 네 가지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이 병렬되어 있을 뿐, 이것을 아우르는 겉 이야기가 따로 없다. 게다가 액자소설 일반과 달리 소설 속의 네 가지 작품의 쓴 이를 서로 다르게 밝혀 두었다. 첫째 작품인 소설 <채권>을 쓴 이는 작가 ‘해럴드 베너’이며, 둘째 작품인 자서전 <나의 인생>을 쓴 이는 자서전의 주인공 ‘앤드루 베벨’이고, 셋째 작품인 <회고록을 기억하며>를 쓴 이는 자서전 대필자인 ‘아이다 파르텐자’이다. 그리고 넷째 작품인 일기 <선물(先物)>을 쓴 이는 일기의 주인공 ‘밀드레드 베벨’이다.

결국 대부호 베벨의 부부에 관해 네 사람이 제각기 다른 시각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을 ‘소설’과 ‘자서전’, ‘회고록’, ‘일기’로 쓴 것인데, 어느 작품을 더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다. 제목 <트러스트>는 다의적이지만 네 작품들의 내용에 대한 ‘신뢰’를 묻는 것이자 또한 쓴이에 대한 ‘신뢰’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트러스트>의 작가는 네 사람의 다른 작품을 구성함으로써, 다루고자 하는 동일한 사건과 서술주체, 서술 장르가 어떤 관계 속에서 신뢰 여부를 구축하는가 하는 의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마치 일본영화 ‘라쇼몽(羅生門)’처럼, 하나의 사건인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그의 아내와 산적, 죽은 사무라이가 빙의된 무당이 저마다 자기 입장에 따라, 사무라이의 죽음은 살인행위이거나 정당한 결투, 비겁한 습격으로 다르게 증언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제각기 설득력이 있으므로 누구의 이야기가 정확한 증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 작품 <트러스트>도 그렇다. 특히 <트러스트>는 작품을 서술하는 주체만 다른 것이 아니라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장르가 가지는 속성도 고려해서 신뢰를 판단해야 한다. 먼저 처음 작품인 작중 소설부터 보자.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번역 <트러스트>(문학동네, 2023년 2월 출판)

처음 작품은 헤럴드 베너의 소설 <채권>이다. 소설답게 베벨부부의 이름도 벤자민과 헬렌으로 바꾸었다. 벤자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담배기업에서 금융산업으로 눈을 돌려 채권과 주식 투자로 큰 부자가 되고 월가의 전설적 인물로 떠오른다. 그의 아내가 된 헬렌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아버지로부터 수학과 화학, 광학을 배웠으며 벤자민과 결혼 후에 재산은 더욱 늘어났다.

헬렌은 조용한 내조자로 생활하며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인도주의 사업을 지원했다. 1929년 공황이 닥치면서 벤자민은 경제붕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헬렌은 정신병을 앓는다. 정신병을 앓는 중에도 그녀는 미래의 자신을 위해 매일 엄격하게 일기를 썼다. 벤자민은 헬렌의 정신병을 약물을 쓰지 않는 자연치유보다 새로 개발된 약물요법으로 광기를 잠재우도록 만든다. 약물요법으로 광기는 잠재웠지만 헬렌의 건강은 악화되어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벤자민은 결국 헬렌의 건강보다 광기를 잠재우는 데 더 치중한 셈이다.

둘째 작품은 아내 밀드레드(소설에서 헬렌)가 죽은 뒤에 앤드루 베벨(소설에서 벤자민)이 쓴 자서전 <나의 인생>이다. 베벨은 자기의 업적과 개인적 삶이 국가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자서전을 펴내게 되었다고 하면서 두 가지 의도를 밝힌다. 하나는 아내 밀드레드의 삶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며, 둘은 국가의 위대한 성공은 오직 특출한 의지를 지닌 개인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의도대로 베벨은 자서전을 통해 자기 가문의 명예와 자기 부부의 이미지를 좋게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증조부에서 자기 대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금융업 가문이라는 사실을 길게 서술하고, 수많은 위기와 공황을 거치면서도 자기 조상들은 더 강하게 성장했으며 만인을 위해 번영하는 건전한 경제를 지켰다고 자부한다.

아내 밀드레드는 음악을 사랑하고 독서를 좋아해서 연주자들과 공공도서관을 열렬히 후원했으며, 인도주의 사업에 많은 기부를 했다. 아내의 자선 행위를 서술하는 한편 아내를 사랑과 친절로써 자기를 구원한 존재로 그렸다. 그녀의 죽음에 관해서도 앞의 소설과 달리, 정신병이 아니라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셋째 작품은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 대필 작가였던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을 기억하며>이다. ‘아이다’는 인쇄공 아버지의 가난한 딸이다. 아버지는 돈을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공상적인 상품이자 허구라고 하며,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이다. 바닥생활을 하던 아이다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베벨의 자서전 대필작가로 채용되는데, 채용 첫날 비밀유지 각서를 쓴 뒤에 신권으로 과분한 주급을 선불로 받는다. 그리고 베벨을 직접 대면하여 그의 생애담과 함께 밀드레드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특권을 누린다.

베벨은 면담을 통해서 자신에 관해서는 물론, 특히 아내 밀드레드에 관해 자상한 인물이라는 이미지 조작을 요구받고 관련 일화를 그럴듯하게 지어내서 서술하도록 한다. 따라서 베벨의 의도와 요구에 따라, <자서전>에 서술된 그들 부부의 아름다운 사생활은 대필작가 ‘아이다’에 의해 조작된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왜냐하면 베벨 스스로 구술한 내용조차 계속 입맛에 맞게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정된 아이다의 원고를 읽은 베벨은 자신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사실에 흡족해 하며, ‘아이다’에 대한 처우를 현격하게 높여준다. 자기 저택 가까이 새 아파트를 얻어줄 뿐 아니라,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로 오고갈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한다. 베벨은 아이다에게 상당한 예우를 하고 저택 깊숙이 불러들일 뿐 아니라, 저택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아내의 방은 비밀의 공간으로 접근을 금지한다. 아내의 비밀이 아니라 자기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금지이다.

‘아이다’가 자서전 원고 집필을 위해, 베벨 부부를 다룬 ‘베너’의 소설 <채권>을 보려고 뉴욕도서관을 찾아갔으나 목록에도 장서에도 그 소설은 없었다. <채권>은 물론 ‘베너’의 다른 작품도 전혀 없었으며, ‘베너’의 이름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베벨에 의해 ‘베너’라는 작가는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삭제되고 뭉개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베벨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아이다’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삭제되고 뭉개져 버릴 것 같은 끔찍한 공포를 절감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호의 자본은 있는 현실조차 자기에 맞게 임의로 조정하고 구부리는 초월적 힘을 가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현실조차 제멋대로 조작하는데, 자기 삶에 관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구술하여 자서전을 서술하도록 했을 까닭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국 베벨의 <자서전>은 자기 삶을 불만족스럽게 소설화한 ‘베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현실 조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베너’의 소설 <채권>을 모두 수거해서 폐기하고 베너의 존재 자체도 삭제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자신의 <자서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베너의 소설에 이어 베벨의 자서전을 배열시킨 것은 그러한 대립 관계를 분명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였다. 작가는 자서전에 이어 ‘아이다’의 회고록을 배치함으로써 소설과 자서전의 대립이 갈등으로 증폭되어 절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회고록은 진실성 투쟁의 꼭지점을 이룰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긴장 넘치는 흥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회고록은 대단원의 막을 이루지 않는다. 소설 전체의 결말은 넷째 작품인 아내 밀드레드의 일기 <선물(先物)>에서 이루어진다. 일기는 날짜가 없고 하루 중 오전과 오후, 밤만 표시되어 있다. 한두 단어만 쓴 것도 있고 서술이 암호처럼 뜬금없어 읽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남편 베벨의 <자서전>과 견주어 읽고, 어느 작품이 신뢰할 만한가 하는 관점에서 일기를 주목하면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울 수 있다. 일기의 제목이 ‘선물’이라는 투자용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많은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한 이후부터 쓴 일기인데, 사흘 째 일기에 “앤드루가 취리히에서 전화했다. 내 건강을 엄청나게 걱정하는 척하면서 사업에 관해 질문한다.”고 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는 베벨의 자서전에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줄곧 함께 있다가 아내의 임종 시에 단 한번 집을 떠나 취리히에 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기에 따르면 입원 초기부터 줄곧 취리히에 가 있었던 셈이며, 전화를 한 이유가 아내의 건강 때문이 아니라 사업에 관해 자문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이어지는 일기에서 더 확인된다. 베벨은 수시로 취리히에 갔을 뿐 아니라, 취리히에서 돌아와 병원 숲에 소풍을 가서 치료 이야기를 할 때도, “살금살금 화제를 돌려 취리히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는 질문을 단정적인 진술처럼 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그가 K. G. T를 계속 보유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고 했다. 이 기록을 볼 때, 베벨의 금융투자와 성공은 전적으로 아내 밀드레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일기에 ‘베벨은 다시 취리히로 떠났다. 부분적으로는 사업 때문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내 병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내 병에 화를 낸다’는 대목을 보면, 베벨이 아내의 질병에는 무관심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투자자문을 받는 데만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금융자문뿐 아니라 미술품을 구입할 때도 취리히에서 아내에게 전화한다. 아내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정확한 방법을 알아차린다. 아내의 결정에 따라 좋은 결과를 내게 되면, 베벨은 마치 자기 ‘직관’의 결과인 것처럼 자만한다. 그럴 때면, 밀드레드는 남편에게 쏘아붙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야 했다.

밀드레드는 기억력 천재이자 수학 천재였다. 이미 11살 때부터 기억력 테스트와 엄청난 수학문제를 척척 풀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독서와 음악에 관한 교양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러나 베벨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투자에도 귀재여서 베벨에게 수시로 투자 자문과 지시를 했다. “교향악단에게 기부하며 주었던 소액으로 내가 자기 기금보다 더 나은 수익을 올린 것을” 본 베벨은, 아내의 장부를 보고 따라해 보았지만 신통찮았다. 밀드레드가 남편의 자금 규모에 맞는 새로운 스케치를 해주자 비로소 대단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부부는 진정한 사업동반자가 되었다. 베벨은 거액의 투자금을 대고, 밀드레드는 투자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베벨은 아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자기 주위에서 생겨나는 신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 또한 남편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토록 높은 투자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처지에서 볼 때, 남편이 인형이라면 자기는 남편을 움직이는 복화술사였다. 남편은 아내의 지시를 듣기 싫어했고 아내 또한 오직 그를 통해서 말하는 게 싫었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도 금이 갔으며 쇼윈도우 부부로 지내게 되었으나, 기이한 협력은 이어져서 밀드레드는 공매도를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녀는 1929년의 공황도 미리 예측했을 뿐 아니라, 금융계의 허점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반면에 베벨은 범죄를 저질렀다. 따라서 밀드레드는 남편 베벨을 범죄자라 불렀고 부부는 2년 동안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앙숙이 되었다. 그럼에도 밀드레드는 암으로 죽어가면서 끝까지 남편에게 조언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네 가지 장르의 작품을 읽노라면, 첫째 장르인 소설은 갈등을 이끌어가는 사건이 없고, 둘째 장르인 자서전은 거의 계보학 수준의 사실 서술과 성공담만 있어서 흥미가 없는데, 셋째 장르인 회고록은 이념의 대립과 조작의 음모, 위협과 공포를 조성하는 사건이 역동적이어서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넷째 장르인 일기는 산만하고 두서없이 쓰여진 암호 같은 서술이어서 읽기도 어렵거니와 전혀 흥미롭지 않을 것 같은데 예상과 달리 가장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앞의 소설과 자서전의 내용을 뒤집어엎는 반전의 묘미 때문이다. 그러한 충격적 재미를 느끼려면 앞의 작품들이 재미가 없어도 모두 읽어야 한다.

그 자체로 보면 밀드레드의 ‘일기’는 한낱 메모장 같아서 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일기는 베너의 소설은 물론 베벨의 자서전과 아이다의 회고록까지 넘어서는 파격적 진실을 드러내는 까닭에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베너는 소설에서 베벨이 냉정한 인간이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긴 하지만 투자자로서 성공한 인물로 그렸다. 그러나 밀드레드의 일기는 남편 베벨이 도덕적으로 사악한 인물일 뿐 아니라 투자자로서도 젬병일 뿐, 진짜 투자의 주역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자선사업을 한 것은 자신이 벌어들인 수익에 비하면 빵부스러기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자기 이름으로 더 이상 자선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기까지 한다. 베벨은 아내의 이름으로 자선사업을 했지만, 사실상 그 자선은 모두 자기 돈에서 나간 것처럼 생색을 내기 위한 위선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일기’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신뢰성을 획득하는 것은 자기 경험에 기초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 읽힐 목적이 없는 비밀 기록이므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미지를 조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기를 통해서 금융계의 영웅 베벨은 아내 밀드레드의 한갓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월가의 진정한 영웅은 밀드레드라는 사실이 여러 모로 입증된다. 베벨 우위의 모든 서사가 밀드레드의 일기에 의해 완전히 뒤집어지는 충격을 준다. 베벨 부부의 이러한 역전은 서사적 반전과 함께 여성주의 경향까지 드러낸다. 반전 구조로 드러나는 숨은 진실은 메모장 같은 두서없는 일기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마치 보물찾기처럼 암호 같은 기록 속에서 뜻밖의 진실을 발견하는 놀라움이,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일기’ 읽기의 재미이자 유용성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대부호 베벨의 위선과 범죄를 폭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막장 노동을 하는 가난한 사회주의자의 성실한 허약함에 견주어, 지나친 풍요를 누리는 자본가의 막강한 폭력 행위를 대조적으로 고발한다. 사회주의자는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반면에, 대부호는 공매도의 시세 차익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뿐 아니라, 돈의 위력으로 있는 현실까지 제멋대로 조종하고 왜곡하며 조작하는 등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거부의 생활에는 위선과 거짓, 범죄와 부패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성하게 서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네 가지 기록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 여부가 어떻게 가려지든, 궁극적으로 금융자본가 베벨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위선적 존재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소설 <트러스트>는 표면적으로 네 가지 장르의 기록에 대한 ‘신뢰’ 여부를 다루면서,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벌들이 거둔 부의 축적과 명성, 자선 등에 대한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비판적으로 재인식하게 만드는 데 충분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하겠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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