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사시이비(似是而非) 토론 왕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말을 잘하는 것과 거침없이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잘하는 것은 말에 자기 철학이 담겨 있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이럴 때 설득력도 당연히 따라붙는다.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에게 이런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요즘 요란하게 매스컴을 타는 것 중 하나가 한동훈 위원장의 토론 제안이다. 토론의 상대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한동훈은 시간과 장소 심지어 진행자까지 이 대표가 정하라고 호기를 부리고 있다. 이런 공격적이고 당돌해 마지않는 한의 제안을 다루는 매스컴의 보도 흐름도 한동훈이 토론 왕으로 상정한다.

한동훈의 토론 제안에 제1야당 대표가 지레 '쫄아서' 피한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먼저 격의 문제이다. 정치하는 동네에서는 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재명 대표는 명실상부한 제1야당 대표이다. 이에 비해 한동훈 위원장은 한시적 비대위원장이다. 총선과 동시에 물러날 사람이다. 제1야당 대표는 대화든 토론이든 먼저 대통령과 하는 것이 격에 맞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을 애써 피해왔다. 취임한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진지한 대화를 가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 대표의 범죄 혐의를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이재명 수사를 야당 대표 '죽이기'로 이해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표적 수사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상이라고 한탄한다.

각설하고, 한동훈이 토론에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그것을 미끼로 이재명을 압박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토론의 '토'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토론은 상대가 있는 대화 방식이다.

한동훈의 말 특징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데 있다. 마음을 헤집는 모난 어휘로 상대를 공격해댄다. 이런 말씨름으로 시종여일할 텐데, 토론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는가.

좌로부터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상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에 능한 사람을 '싸움 닭'(?)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토론자로서 함량 미달이다. 즉 효율성과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동훈에게 국힘당 비대위원장을 맡긴다고 할 때 가진 우려도 그의 말 품새였다. 지도자의 말은 사이다성 통쾌함이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거기에 감동이 뒤따르게 해야 한다.

한동훈이 과연 그런가. 당 대변인이나 원내 수석부대표가 할 수준의 말을 거침없이 해 댄다. 지지자들에게 당장은 후련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다수의 국민에게 솔직히 부담될 때가 많다.

그뿐 아니라 뱉은 말이 부메랑 되어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의 모난 말 품새는 국힘당 지도부 및 정부 관련 부처까지 확산되어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착각은 자유'라는 유행어가 있다. 한동훈 자신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한동훈=말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주제를 갖고 해도 좋으니 나와 토론만 해 달라고 강청한다.

하지만 정치하는 동네의 분위기를 모르고 떼쓰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에는 차려야 할 격이 있고 식이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나에게 한동훈은 사시이비(似是而非) 토론 왕으로밖에 안 보인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