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詩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잊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온 사람아

* 이성부 시인은 쉽게 쓸 수 있는 문장을 어렵게 쓴다. 직선이면 족할 것을 곡선도 모자라 비비 틀어 글자를 채운다. 그러고 나면 한 편의 시가 된다. 그것도 알곡과 같은 시로... 가령 이런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겨울이 지나면 오지 말라고 해도 봄은 온다. 하지만 이 시인은 이런 봄이 누군가의 재촉으로 어렵게(더디게) 온다고 했다. 이것은 시인만의 영역이다. 재미있는 것은 봄의 재촉자가 바람, 그것도 '쓴맛' 다신 바람이다. 왜 쓴맛인가? '뻘밭 구석', '썩은 물 웅덩이', '싸움 한 판', '지쳐 나자빠져'... 쓴맛의 시어들이다. 이런 바람이 달려가 깨우면 지체할 수 없다. 지체하면 자기(봄) 손해니까. 이렇게 오는 봄은 더 멋지다. 마치 진흙 가운데 만개한 연꽃처럼... 이렇게 귀하게 온 손님을 외쳐 자랑하고 싶지만 목 메어 소리 나지 않는다. 다만 두 팔 벌여 껴안아 볼 뿐이다. 눈이 부셔서 차마 알아 볼 수 없는 그대 봄이여!(耳穆).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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