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안동대 명예교수, 민속학자)

독자가 소설을 읽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허구적 서사에 빠져들기 위한 것이다. 사실이 아닌 가공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현실보다 더 현실인 것처럼, 또는 내가 겪는 사건인 것처럼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준비를 하고 소설을 읽는다. 작가는 그런 독자를 현혹하는 미끼와 빠져들 함정을 잘 갖추어 사건을 구성하고 서사를 이끌어가야 한다.

독자는 작가가 던진 미끼를 따라 허구의 함정에 기꺼이 빠졌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마치 특별한 인생 체험을 한 것처럼 깊은 감동과 함께 현실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눈을 뜨게 되고 자연스레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는 독자를 빠뜨릴 만한 깊은 함정이 없다.

허구적 사건이 함정을 만들지 않는 까닭이다. 작품의 서두에는 사건 자체가 없다. 주인공 펄롱이 석탄을 비롯한 각종 땔감을 파는 일상적 업무와 가족의 소소한 생활이 길게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는 감정 이입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의 직업과 가족의 일상에 큰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서사적 발단이 사건으로 연결되지 않아 독자로서는 다소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서두를 지나 중반부에 이르면 두 가지 사건이 제시된다. 하나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고, 둘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깊이가 없어 독자가 사건의 함정에 빠져도 쉽게 탈출할 수 있다. 이를테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펄롱은 사생아인데, 그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출생의 비밀이 문제적 사건이다.

펄롱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보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적하지 않은 까닭에 서사의 큰 흐름을 이루지 않는다. 몇 사람에게 잠깐 물어보다가 만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 윌슨 부인의 일꾼 네드와 얼굴이 닮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서 다소 충격을 줄 뿐이다.

그마저 더 들어가지 않고 거기서 끝나고 만다. 자기 출생의 비밀을 푸는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창조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데, 거기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아서 아쉽다.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라는 사실이 다음 사건을 전개하는 데 더 기능적이다.

둘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의 사건이다. 펄롱이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고아처럼 학대받으며 일하는 남루한 아이들이 자기를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간청을 듣는 데서 사건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요구에 손사래를 치고 나왔지만 그 생각이 자꾸 떠올라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내에게서 우리 일이 아니니 관심을 끄라는 타박만 받게 된다. 그 뒤에 우연히 수녀원 석탄창고에 개처럼 갇혀 있는 남루한 차림의 ‘세라’라는 아이를 만난다. ‘세라’는 자기가 아기를 낳은 지 14주 되는데 아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수녀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펄롱은 수녀와 수녀원장을 만났으나 감히 그 질문을 하지 못한 채 세라를 그냥 두고 수녀원을 나오고 만다.

마음속으로 ‘세라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내 아일린이 수녀원에 수용된 아이들을 동정하게 되면, 자기네 딸아이들이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학교 진학에 장애가 된다고 할 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수녀원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끼어들었다가는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모두 쉬쉬하며 묵인하고 있는 까닭이다.

수녀원은 담장이 높은 데다가 그 위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박혀 있고, 건물 유리창은 검게 칠해져 있을 뿐 아니라 쇠창살까지 부착되어 있다. 아무도 엿보거나 범접하지 못하는 폐쇄적 수용소 기능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성탄절 전야에 석탄 배달을 끝낸 펄롱은 두려운 마음을 안고 혼자서 수녀원의 석탄 창고로 간다. 빗장을 열자 이전처럼 세라가 거기에 갇혀 있었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펄롱은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갈등하는 것을 느끼며, 세라를 사제관으로 데려가 신부님을 만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다 한 통속”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펄롱은 세라와 함께 집으로 가며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 여긴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생각한다. 두려운 감정 속에도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하고 믿는 데서 작품은 마무리된다. 다른 소설 같으면, 이제 막 사건의 절정을 향해 치달을 법한 문턱에서 돌연 결말을 내고 말았다.

주인공 펄롱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다. 열심히 밥벌이하며 가족들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는 데 만족하며 사는 소시민들은 체제의 모순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정부의 일이자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간주하고 남의 일처럼 여긴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번역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 2023년 11월 출판)

자기 안일만 생각하는 소시민일수록 고아나 미혼모, 부랑아,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을 수용하는 시설이 있어서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용시설에서 이중고를 겪는다. 부모 없는 것도 서럽고 장애인인 것도 큰 고통인데, 수용시설에 갇혀서 극도로 통제받는 생활을 하게 되는 까닭에 인권침해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장애인 학대 사실이 드러나 장애시설 패쇄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부랑자 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사회악 일소를 구실로 삼청교육대에 수용하여 인권 탄압을 자행한 사실이 그런 보기이다. 유대인 강제수용 공간인 ‘게토’는 히틀러의 만행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사실은 이러한 수용시설의 또 다른 확대일 따름이다. 시설의 규모와 감금, 학대의 차이만 있을 뿐 강제 수용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저자의 나라 아일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과 연관되어 있는 작품이다. 수녀원과 같은 가장 순수한 봉사기관에서도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비리가 구조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을 함부로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일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거대 권력일수록 수용시설 운영 목적을 위선으로 가장한다.

나치는 순혈주의를 내세워 유대인을 게토에 가두었고, 삼청교육대는 사회정화를 구실로 군대식 수용소에 감금했다. 작품 속의 수녀원도 탈선한 여아들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므로 겉으로 표방하는 위선에 현혹되어 수용시설의 횡포를 외면하는 것이 문제이다.

공권력이 일정한 기준으로 비정상적인 사람을 설정하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여 수용하게 되면, 치외 법권 시설이 되어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게토’처럼 끔찍한 인권 탄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수용시설이 있어서 사회가 더 편안하고 정화되었다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는 이기적인 편향성 탓이며 소극적으로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기는 소시민적 안일 때문이다. 목사 마르틴 뉘밀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가 이런 태도를 잘 지적하고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소설은 위의 시적 각성을 서사적 양식으로 서술한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권력이 일정한 집단을 타자화하여 잡아 가두는 것이 강제 수용시설의 부정적 기능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이기적 편의에 영합하여 이러한 시설을 묵인하거나 남의 일처럼 외면하기 일쑤이다.

집단 수용시설의 폐단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안이 개인적 돌봄이다. 이를테면, 고아들을 고아원에서 기르는 것보다 일반 가정에서 입양해 기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결손가정의 자녀들은 정상 가정에서 돌보고, 장애아동은 건강한 사람들이 돌보며, 가난한 사람들은 넉넉한 사람들이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펄롱의 가족사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펄롱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다. 펄롱은 사생아로서 아버지를 모른 채 어머니의 성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미혼모인 그의 어머니나 사생아인 펄롱 자신은 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큰 어려움 없이 소시민적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미혼모인 어머니와 사생아인 자신을 품어준 윌슨 부인의 배려 덕분이다.

윌슨 부인은 하녀인 펄롱의 어머니가 자기 집에서 사생아를 낳았지만, 탈선한 여자로 비난하거나 내보내지 않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그러므로 펄롱 모자는 미혼모로서 또는 사생아로서 겪어야 할 고난을 심각하게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수녀원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비리를 알고도 침묵하는 마을 사람들의 외면과 묵인을 고발하는 데 있다. 비리가 계속되는 것은 그것을 알고도 비판하지 않고 모른 체 외면하며 침묵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작가 클레어 키건은 펄롱 모자를 돌봐준 윌슨 부인의 배려와, ‘세라’를 집으로 데려가는 주인공 펄롱의 용기를 통해 그러한 침묵에 균열을 내면서 구체적 실천 대안을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거대 악과 맞서 싸우는 투쟁 못지않게 소시민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진정한 용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펄롱의 아내 일리안은 가족들의 평온한 일상을 깰 수 있다고 여겨 수녀원에 수용된 아이들에 대한 남편의 개입을 적극 말리고 나섰다. 그러나 펄롱은 아내의 생각과 달랐다. 펄롱은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하고 세라와 딸을 동일시할 뿐 아니라, 마침내 세라와 자기 어머니를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따라서 세라를 데리고 나오면서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고 여겼다. 결국 세라를 가족 이상의 가족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세라를 구하는 일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를 구하는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 왜 엄청난 일인가 하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없다면 나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펄롱은 어머니와 자기 딸들을 동일시함으로써 여성주의에 눈을 뜨고 있다. 수녀원장이 펄롱에게 ‘딸만 다섯이므로 이름을 물려받을 아들이 없어 섭섭하겠다’고 했을 때, 자기는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기에 딸이라고 해서 섭섭할 이유가 없다’고 할 뿐 아니라, 자기 어머니가 딸이었던 것처럼 원장님도 딸인 어머니의 딸이었다고 응수하며 맞선다.

남성적 권위에 매몰된 수녀원장에게 어머니와 딸의 동일성을 통해 여성주의적 인식을 일깨워준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 어머니로부터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없다. 어머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딸이 곧 어머니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딸로 태어난다. 수녀원장이 딸인 것처럼 세라도 딸이자 어머니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딸을 구하는 것은 누군가의 어머니를 구하는 일이다. 그 누군가는 나 자신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세라를 구하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 나를 구하는 일이다.

윌슨 부인이 펄롱 모자를 돌본 것처럼, 펄롱이 그녀를 따라 세라를 돌보면, 세라 또한 그를 본받아 누군가를 돌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세라를 데려오는 일은 그 자체로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의 체계를 이룰 뿐 아니라, 계속 순환하며 이어져 있는 까닭에 사실은 엄청 대단한 일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소소하게 갈무리해 두었다. 최선의 삶은 영웅다운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시민의 사소한 실천에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깨우쳐주는 작품이다.

취재부  daum.net

취재부  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