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건강 검진의 날이다. 어제 저녀부터 굶고 병원에 갔다. 채혈 때문이다. 오전 8시 30분 피 검사를 했다. 한 시간쯤 뒤에 담당과에서 문자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다.

혹시 하고 예약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오후 3시 30분으로 되어 있있다. 이런! 매번 오전 진료였는데, 왜 이렇게 되어있지? 간호사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오전 시간으로 바꿨다.

그래도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결원 환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대기실엔 TV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민간 기업에 넘어간 YTN이었다.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화면이 반복해서 돌아갔다. 김혜경 여사 법카 문제, 민주당 공천 파동으로 난리가 난 듯한 영상... 한 20여 분을 이런 뉴스로 채우고 있었다.

저런 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집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당이 국민을 위한다? TV 뉴스에만 의존한다면 저런 당에 표 줄 마음이 생길 리 만무하다.

민주당의 부정적 뉴스와는 정반대 내용의 국힘당 뉴스가 뒤를 이었다. 한동훈의 훌륭한 리더십, 국힘의 안정적인 총선 공천, 대통령의 지역 방문... 이런 당이 총선에 승리해야 한다는 바람이 은연중 깔려 있었다.

이런 TV 뉴스를 본 대중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4.10총선에서 어느 당에 표를 던질까?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함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선거는 표가 말해 준다. 표는 질이 아니라 양으로 따진다.

이런 기울어진 언론 풍토에 자신만만한 국힘당이다. 권력 기관 장악 후 언론만 잡으면 끝난다. 극우 진영의 장기 집권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권력 기관은 현실적 힘이다. 언론은 그것의 선전 매체다.

여기에 여론조사까지 이용한다. 질문지가 어떠하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여론조사의 무게는 유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 분위기가 좋을 땐 조작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형평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권력과 금력에 휘둘리는 언론은 차라리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게 낫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 위에 각기 서 있는 언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진리와 진실의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극우 편향의 언론들,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종편들은 진영논리가 진실 위에 위치해 있다. 위험 천만한 이유이다.

이런 극우 언론이 검찰 독재 정권과 호흡을 같이 할 때 무소불위의 힘을 발산한다. 정권과의 암묵 속에서 극우 편향에 더욱 속도를 낸다. 이것을 막을 방도가 마땅찮다. 진보 정권도 이것이 버겁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 정권을 '입틀막' 정권이라고 부른다. 대통령 앞에서 바른 말을 하면 입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얼마 전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도 ‘입틀막’이 있었다. 보지 않은 건만 못하다.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한 졸업생을 대통령 경호원들이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어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유신 독재가 다시 도래한 듯하다.

사실,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장에서 ‘입틀막’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신성해야 할 대학 졸업식장에 거짓과 사술이 판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경호원들이 학위복으로 위장하고 앞 좌석에 포진했다.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가? 거짓을 진실로 포장해도 과연 괜찮다는 말인가? 거기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까. 권력은 정당하게 사용될 때에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 오직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이런 언론 풍토에서 선거의 결과는 뻔하다. 정부 여당은 선(善), 야당과 바른 소리 하는 국민은 악(惡)의 전선은 의외로 강고하다.

4.10 총선, 정권이 아무리 잘못하고 있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야당이 승리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개인의 욕심에 연연해 분탕질도 마다하지 않는 인사들이 있다는 것은 욕된 일이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