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라이프 서평
[임재해 교수의 책 읽기] 기행문학의 새 지평 서미숙의 <종점 기행>
취재부 | 승인 2024.02.18 18:40
임재해(민속학자, 안동대 명예교수)

기행은 물론 여행만 하더라도 명승고적이나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 떠나기 일쑤이다. 일찍이 신경림 시인이 ‘민요 기행’을 하면서 민중의 생활세계를 노래와 함께 살핀 적이 있다. 그러나 시내버스 종점 마을을 찾아가는 ‘종점 기행’이라는 것은 새삼스럽다. 일찍이 없었던 기행이기 때문이다.

기행은 목적지를 오가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데, 종점 마을에 가서 과연 그런 기록 거리들을 찾을 수 있을까. 수필가 서미숙의 <종점 기행>(도서출판 한빛)을 받아드는 순간 그런 우려부터 앞섰다. 시내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오지마을 풍경이란 으레 그저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 탓이다. 그런데 머리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첫 차로 떠나 종점 마을을 누비다가 초저녁 별을 보며 막차로 돌아오곤 했다.” “그곳에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새소리 물소리 벗 삼아 느릿느릿 걷다 보면, 미움도 욕심도 내려놓게 된다.” “어르신들의 오래된 이야기, 요즘 세상에 대처하는 지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과 인연이 닿으면 다담을 나누고, 여의치 않으면 부처님과 오래 독대했다. 청정 도량 툇마루나 정자에서 먼 산 바라기만으로도 족했다.”

머리글 몇 문장만 읽어도 종점 마을 기행을 따라나서고 싶어진다. 문제는 종점 마을이 아니라 찾아가는 사람의 수준이다. 누가 종점 마을을 찾아가 어떻게 마을과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냥 심드렁할 수 있는가 하면, 거기서 사람살이의 오랜 슬기와 따뜻한 인정, 절절한 사연들을 곡진하게 만나게 되면 뜻밖의 감동으로 마음이 설렐 수 있다. 저자는 예민한 눈썰미와 다양한 독서 이력, 준비된 사전지식에서 비롯한 창조적 상상력이 종점 마을을 살아있게 만들고, 다정한 말 붙임은 주민들을 모두 훌륭한 마을 정보 제공자로 만들었다.

나의 심드렁한 선입견을 일거에 거두어 간 것은 첫째 기행인 38번 종점의 살강마을이다. 버스가 한티재를 지나자, 저자는 권정생의 소설 󰡔한티재의 하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남편 건재가 죽자 정원은 살 길을 찾아 어린 3남매를 데리고 친정으로 먼 길을 걸어가는데, 낙동강 나루지 노인이 남루한 행색의 정원에게 신었던 짚신을 벗어주는 장면이다. 인간의 측은지심을 사무치게 그려놓은 대목이다.

버스가 권정생 동화나라를 지나칠 때는, 몽실이 개가한 엄마 따라 댓골 김씨네 집에서 살다가 고모 손에 이끌려 돌아와 친아버지와 살게 된 노루골을 떠올린다. 노루골이 있는 망호리는 몽실 마을로 거듭나서 깡통 들고 밥 얻으러 다니던 몽실이가 이웃에 진 빚을 갚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에게 살강 가는 길은 권정생 문학의 현장이었다. 허물어진 빈집만 보아도 몽실이네가 거지가 되어 곁방살이 했다는 집을 연상하고, 살강마을을 걸으면서 “소꿉을 싼 치맛자락을 오불치고 엄마 손에 끌려가던 몽실이가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그 길”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살강마을 기행은 권정생 문학 기행이나 다름없이 민중들의 절박한 사연들이 곳곳에 사무쳐 있다.

다른 마을 기행도 풍부한 사전지식과 지방지에 입각해 있어서 마을의 역사와 사라진 풍속, 문화재의 해설까지 익숙하게 한다. 한 마디로 ‘마을 가이더’ 준비를 해서 마을 답사를 하는 까닭에 주민들이 모르는 사실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사실도 속속들이 알아낸다. 처음 만나는 어른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 지명유래도 알아내고 오랜 전설도 되살려내며, 시집살이 이야기도 살뜰하게 듣고 ‘어육장’ 만드는 법도 배운다. 그러느라 아침 일찍 도시락 싸 들고 첫차로 떠난 길이 저녁 어둠살이가 져야 막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의 시처럼, 저자는 마을을 자세히 볼 줄 알고 오래 볼거리를 찾을 줄 안다. 따라서 뚝눈에는 띄지 않는 풀꽃조차 아름답게 보이고, 목례나 하고 지나치기 쉬운 낯선 어른들도 일일이 통성명을 하고 살아온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며, 고향마을 쏘다니듯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마을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본다. 그러느라 조붓한 산길을 혼자서 걷기도 하고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며 자전거를 얻어타고 이웃 마을까지 가는가 하면, 100살 넘은 할아버지 도사를 뵙기도 하고 79세 처녀 할머니를 만나기도 하며, 귀촌한 청년을 만나 젖은 신발을 말리기도 한다.

서미숙 지음 <종점 기행>(도서출판 한빛, 2023년 12월 출판)

글 쓰는 능력으로 말하면 저자는 수필가이다. 그러나 <종점기행>을 보면 예사 수필가가 아니다. 우선 사물을 자세히 보는 관찰자이고, 시골 노인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훌륭한 대화자이자 인터뷰어인가 하면, 마을의 문화유산을 찾아볼 줄 아는 답사자이고, 민중생활사 자료를 채록하는 구술 생애 사가이며, 오래된 전통을 복원하는 민속지 작성자이다. 일인다역의 역할을 하며 종점 마을이라는 새로운 기행 영역을 개척한 기행 작가이기도 하다. 먼저 관찰자로서 돋보이는 저자의 문장을 보자. 이른 아침 절강마을 망호정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쓴 대목이다.

저만치 호수는 거대한 솜사탕 공장인가 싶다. 밤마실 왔던 안개는 미처 떠나지 못하고 고샅을 배회한다. 가녀린 꽃대를 머금은 광대나물과 빈 밭에 여기저기 흩어진 봄동이 서릿발을 이고 앉았다. 정자 가까이 이르자 차가운 바람결에 청아한 향기가 감겨온다. 호수를 굽어보며 홀로 선 매화가 찬 서리 속에서도 해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구름 같은 매화보다 지금 내 앞의 한 그루 매화가 더욱 소중하다.

인적 없는 정자 앞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스스로 한 그루 매화가 된다. 안개는 고샅을 배회하고 봄동은 서릿발을 이고 앉았으며, 매화는 해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자에게 모든 자연 현상은 사람처럼 살아 있는 모습으로 재창조된다. 사물을 대하는 마음도 이렇거늘 주민들과 말 붙임은 더 다정다감하다. 낯선 만남이지만 용하게 말을 붙여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재주가 있다. 금곡마을에서 만난 오동댁(77세) 할머니에게 ‘할머니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던가?’ 하고 여쭈었다.

요새가 최고 좋으이더. 몸이 불편해서 글치. 오새 만게 걱정 없거든. 옛날에는 영감이 빚지어 놓으면 그 빚을 갚느라고 쇠띠 빠지도록 해가 갚아야 되지요. 약 먹고 죽을라꼬 약병도 뚜껑 땄다가 내가 이걸 먹으마 이 아(아이)들 고아 된다 싶으고, 내 하나가 희생하만 아들이 이런 고통 안 받는데 싶어 들섰던 뚜껑을 다부 닫고 내 몸 하나 희생을 해야 될따, 이래가주 살아 왔니더.

오동댁은 열 여덟 살에 선도 보지 않고 금곡으로 시집 왔다. 일곱 살 위의 남편과 사별한 지 25년째다. 남편이 젊을 때 담배 농사로 목돈을 쥐게 되면 길안 장터에 가서 노름을 하고 술집 출입을 하느라 하룻저녁에 다 날려버리고 때로는 빚까지 지고 들어왔다. 마음고생이 워낙 심해서 죽을 작정을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두 살 터울로 올망졸망 셋이나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 열었던 약병 뚜껑을 도로 닫았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도 털어놓기 어려운 절박했던 삶의 고비를 술술 털어놓은 것은 저자를 딸보다도 더 미덥게 여긴 까닭이 아닌가 한다.

구담 성당에서 만난 금성임(89세) 할머니로부터 하느님을 믿게 된 사연도 어렵지 않게 들었다. 세례명이 소피아인 할머니와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옮긴다.

예전에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베가 날 보국대 안 보내려고 일찍 시집 보내부랬어. 영감님은 16년 전 구십에 돌아가셨고. 내가 사람한테 위로를 못 받고, 부모한테도 위로를 못 받고, 가장한테도 위로를 못 받고, 그래가주고 하느님께 의지해야 되겠다 싶어 내 스스로 나왔어. 교회 가려고 뻐덕한 광목 치마저고리 입고 나서니 할아버지께서 어디 가냐고 물어. 그 집이 종손이라 제사 모셔야 하니 가려면 교회 가지 말고 성당 가거라 해서 성당을 다니게 됐어. 그래그래 마음을 잡아서 아들 둘 데리고 오늘까지 왔어.

짧은 이야기 속에 소피아 할머니의 신앙생활 동기와 가족사와 사회사, 교회사가 다 갈무리되어 있다. 교회와 달리 성당에서는 조상 제사를 금기시하지 않는 까닭에 시어른의 허락을 받아 성당에 다닐 수 있었다. 사람은 물론 부모나 가장한테서도 위로를 받지 못해 하느님께 의지하려고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은 여느 신도들 수준의 기복신앙과 수준이 다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까닭에 완전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사람하고는 상대가 안 돼. 위로가 안 돼.”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로서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려는 신앙심은 상당히 성찰적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춘산댁 탁오출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는 트럭에 탔다가 탈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칠 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서 이름이 오출이다. 열세 살에 학교에 갔는데 2학년이 되자, 방위라며 딴 방으로 빼내어 며칠 가르치더니 어느 날 군용 트럭이 와서 모두 태우기 시작했다. 지금 가면 집에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눈치를 살피다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근처에 있는 코스모스 밭으로 뛰어내려 숨었다. 신발도 잃어버린 채 맨발로 재를 넘어 집으로 도망을 왔다.

마루 밑에 숨어 있는데, 이틀 후에 순사들이 찾아와 딸을 안 내놓으면 오빠를 보국대로 끌고 가겠다고 협박하고 갔다. 올케는 시누이 때문에 신랑이 죽게 생겼다고 울었다. 궁리 끝에 이웃마을로 시집간 언니 집에 가서 금줄을 쳐놓고 숨어 있었다. 친척 어른들이 시집만 보내부만 안 붙잡혀 간다고 시집을 보내라고 했다. 부모는 “단발머리를 어예 보내노?”하고 걱정하다가 시집을 보냈다. 그래서 열다섯 살에 시집을 왔다. 그때 트럭을 탔던 동갑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가서 여태 소식이 없다. 강제로 끌려가다가 탈출한 증인들이 곳곳에 살아 있는데도 일본 정부는 아직도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민중생활사가 어른들의 생애담을 통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어르신들마다 살아온 이야기가 소설이다.” 할 만큼 온갖 이야기들이 구수하다. 문화유산 답사자로서 면모도 여기저기 보인다. 의촌리 종점 마을에 있는 번남댁에 관한 서술이다.

기와를 얹은 반듯한 판담이 유난히 길다. 솟을대문 행랑채에서 사대부가의 위엄이 느껴진다. 번남댁이다. 고종 연간 대원군 시절에 지은 집이다. 창덕궁을 모방해 지은 아흔아홉 칸 집이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되고 지금은 칠십 여 칸만 남았다. (일부 줄임) 사랑채 대청에 올라 판문을 열었다. 담 너머 집 뒤로는 늠름한 노송이 서 있다. 까마귀와 솔개가 참나무 고목을 오가며 요란하게 우짖었다. 멀리 시사단과 강 너머 도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집 바깥에서 보이는 외벽 판담에서 시작하여 솟을대문이 달린 행랑채로 사대부가의 위엄을 말한다. 집이 지어진 시기의 역사를 추론하고 창덕궁의 형상과 견주어 아흔아홉 칸 집의 웅장한 규모를 설명한다. 직접 사랑채 대청에 올라가 판문을 열고 가깝게 보이는 노송과 참나무, 그리고 멀리 보이는 시사단과 도산의 풍광까지 조망한다. 집을 겉으로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집 주인의 시선으로 바깥 전망까지 포착한 것은 전통가옥 전문가의 안목이다.

종점 기행에서 아주 특이한 경험도 한다. 마을에 가서 경관을 소개하고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주민들이 살아오고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과 달리, 순전히 저자만을 위한 종점 기행을 한 것이다. 76번 종점 기행은 구담 성당 근처에 있는 농운수련원이 목적지이다. 마을이 아니라 수련원을 간 것은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아 자유로운 피정을 선택”한 까닭이다. 수련원의 건립 유래와 시설환경, 프로그램 등의 소개도 알뜰하지만, 정호경 신부님 묘비를 반기면서 “정 신부님은 농민운동을 하다가 스스로 농부가 되신 분”이라고 했다. 농민 사목에 일생을 바친 정 신부님 소개 문장으로는 단연 압권이다.

수녀님을 따라 부용대에 올랐다. 저자는 피정을 위해 수련원을 찾았는데, 수련원의 수녀님들은 자연 속의 묵상을 위해 부용대로 간 것이다. 한 송이 거대한 부용처럼 물 위에 떠 있는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며 저마다 매트 하나씩 깔고 자리를 잡았다.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가부좌를 한 채 묵상에 들어갔다. “눈을 감으니 모처럼 마음의 평정을 찾은 기분이다. 숲속의 풀벌레 소리는 독경처럼 들려온다. 나를 내려놓고 모든 것에서 해방되니 일상에서 부대끼던 일들이 허접스럽게 여겨진다.” 자기 생활공간이 아닌 어느 곳,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그곳이 기도처이자 명상의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정을 떠나고 암자를 찾는지 모르겠다.

<종점 기행>에는 내가 가 본 마을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낯선 마을 낯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느 마을이나 고향마을처럼 익숙하다. 43번 종점인 목현마을은 여럿이서 2001년에 마을 조사를 집중적으로 하고 <까치구멍집 많고 도둑 없는 목현마을>이라는 두툼한 보고서까지 펴냈던 터라 더 익숙했다. 그러나 저자만의 독특한 눈길로 포착한 기록은 새로운 기행으로 다가온다. 마을만 들여다본 위의 민속지와 달리, 종점 기행답게 버스 속에서 장날의 사람살이 모습을 실감 나게 담아냈다. 장날의 버스 안 풍경만으로도 마을살이 형편이 고스란하다. 간추려 옮겨본다.

읍내 시내버스 승강장이 장꾼들로 빼곡하다. 올망졸망한 장 보따리가 손님 수보다 많다. 짐이 섞이지 않도록 포대에 서미 일리 아무개라고 이름을 써놓기도 했다. 누런 마대 포대에 반나마 담긴 내용물이 뭔가 했더니 도토리묵 만들 가루였다. 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물에 불린 후 방앗간에서 빻아오는 길이다. 총각김치 담글 열무도 보퉁이에서 삐져나온다. 산 짐승이 도둑질을 해대어 감당이 안 된다고 한다. 시골에서도 열무를 사서 김치를 담그는 형편이다. 여든이 된 할머니도 장을 봐서 손수 제사 음식을 마련한다. 며느리는 멀리 나가 있고 할머니에게 명절은 힘겨운 의례로 여겨졌다.

이제는 시골 어른들도 김치를 사서 먹는 시대가 되었다. 자급자족하던 시골 마을은 점점 소외되고 도시에 더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시내버스가 있어서 오지마을 어른들의 교통 불편을 덜어주고 있어 고맙다. 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면서 주민들의 짐 보따리를 눈여겨보고, 손님들과 대화를 터서 요즘 시골살이와 마을 사정을 알아내는 것은 민속조사의 긴요한 방법이다. 저자는 현지 조사에 관한 한 민속학자 못지않은 안목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종점 마을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서 반가웠다. 무실 종가에서 만난 류승무 교수는 사회학 전공자로서 한때 모임을 같이 한 일이 있다. 종가 근처에는 집을 못 짓게 해서 담 너머에는 텃밭이 여럿 있었다는 그의 설명은 종가문화를 잘 아는 종손답게 새삼스럽다. 사시나무골에 이사 와서 2층집 짓고 사는 전 면장 임영기 씨는 일가 어른이다. 그가 이사 온 이후로 낙후되었던 마을이 부쩍 달라졌다는 주민들의 반응이 퍽 반갑다. 안동 대원사 주지를 지냈던 혜경 스님이 천주마을 애련사에 계신다는 사실과 자세한 활동 이력도 반가운 소식처럼 읽혔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작가 김서령의 이름을 읽는 순간이었다. 가장 마지막 기행인 11번 종점 임하마을을 읽다가 이 이름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아!’하는 탄성을 냈다. 임하리 고택 주인 김시일(91세) 할아버지의 생애담과 가족사를 서술하다가, “어르신은 지난 가을 작고한 김서령 작가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며 같은 전통 속에 살아가는 고향 사람으로서 문화적 동질감을 나눠왔던 터였다. 특히 임하리는 내가 사는 금소리 이웃 마을이다. 책을 덮고 페이스북에 들어가 김서령의 생전 모습과 슬들을 찾아보며 한참 슬픔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종점 기행과 거꾸로 출발지 여행을 떠나는 종점 마을 어른들도 계신다. 663번 종점인 덕강마을의 류동세(81세), 류동경(78세) 두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시내에서 첫 차 오기를 기다린다. 마을에는 어울릴 사람이 없어서 아침 8시 20분 버스로 시내에 나갔다가 오후 3시 20분 버스로 돌아온다. 신시장 장터에 노인들의 모임방이 있어서 하루 열댓 명이 모여 천 원짜리 화투를 친다. 방값 천 원을 내고 점심은 3천 원짜리 국수 사 먹고 놀다가 온다. 하루 5천 원이면 술 담배 안 하는 사람들끼리 재미있게 보낸다고 한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할아버지가 나들이하는 것을 아는지, 동경 씨 큰 딸 숙희 씨는 서울에서 보름마다 한 번씩 친정을 온다. 올 때마다 모친과 함께 시내 목욕탕을 가고 안동댐 구경을 하다가 맛집을 찾아 외식도 한다. 그렇게 천 리 길을 오간 세월이 10여 년이다. 서울에서 “엄마 때문에 내려와요. 엄마가 우릴 위해 얼마나 참고 살아왔는지 잘 아니까.”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효녀를 보는 것 같다.

종점마을에는 마지막 효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종손도 있고 마지막 선비도 있으며, 마지막 며느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79세 처녀 할머니도 있고, 102세 도사 할아버지도 있다. 지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우리 시대 마지막 모듬살이가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내용은 그저 소발에 쥐잡기 식으로 듬성듬성 짚어본 것일 뿐이다.

<종점 기행>을 잡으면 마지막 마을 기행까지 놓칠 수 없게 만드는 미묘한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저자의 사람살이를 보는 인문학적 식견과 그것을 자기만의 문장으로 오롯이 담아내는 글쓰기 역량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저자처럼 오랫동안 발품을 판 진정성과 땀내 나는 열정이 없다면, 아무리 높은 식견과 문장력을 갖추어도 불가능한 <종점 기행>이다. 구수한 안동 토박이 말씨와 사진작가 수준의 현장 사진들은 덤이다. 기행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해도 지나치지 않다.

 

취재부  daum.net

취재부  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취재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 : 김천일보 김천iTV  |  경북 김천시 거문들1길 88-74  |  전화번호 : 054-436-2287
등록번호 : 경북, 아 00398  |  대표전화 : (054)437-0478  |  등록일 : 2016년 01월 18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이명재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성숙  |  e-mail : gcilbonews@daum.net
Copyright © 2024 김천일보 김천iTV.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