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특집] 단편소설-이발사 C 씨, 아니 C 사장님

이 사진은 글과 관계가 없음(사진=연합뉴스)

표가 도드라지진 않지만 무척 바쁘다. 연말연시 탓이 큰 것 같다. '같다'라는 개연적 표현을 썼지만 확실히 그렇다. 성탄절과 사무총회 그리고 송구영신 예배, 신년감사 예배... 교회 내 일정만 해도 이렇게 빡빡하다.

교회 밖 대외적 행사를 꼽으면 바쁨의 강도는 더해진다. 신년교례회, 여전도 연합회 및 남전도연합회 총회, 임직 대상자 교육... 미처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한 것들이 더 있을지 모른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내는 내 머리를 갖고 지나치게 마음을 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일러도 말할 때뿐이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면서도 한편 일일이 간섭하는 것 같아 솔직히 별로 달갑지가 않다.

두 달마다 이발을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이상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머리칼이 자라듯이 삶에 변화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손톱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요 며칠 아내의 성화가 심했다. 나이 들어서, 그렇지 않아도 추레하게 보이는데 머리카락까지 긴 탓에 노숙자 저리 가라 이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이발을 하라는 거다.

아내가 나에게 붙인 별명이 '청개구리'다. 시키면 뻗대고 도리어 더 하지 않는 데서 붙은 것이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심리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도 증명되지 않았나. 아내가 서울 볼일 보러 간 사이 이발관을 찾았으니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발관이 쉬는 것은 협회 약조 때문이다. 늘 들어도 헷갈린다. 지금도 쉬는 요일을 잘 모른다. 따라서 이발관엘 갈 때는 이발사 C씨에게 전화로 꼭 확인한다. 또 대기 손님이 많은지도 물어본다.

이발사 C씨라고 했지만 그이 앞에서는 ‘C 사장님’이라고 불러 준다. 사장이란 호칭을 그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 대화 중에 비친 그의 말을 모자이크해 볼 때 70 중반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C 사장은 지역사회의 소식통이다. 마을에서 붙여 준 그의 별명이 '중앙정보부'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데서 붙은 것이다. 기관명 중앙정보부가 아니라 중앙정보장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본 마을뿐 아니라 이웃 마을들의 크고 작은 행사부터 각 가정의 애경사까지 그는 훤히 꿰뚫고 있다. 마을에 이장이 있고 또 그 아래 반장이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궁금한 일이 있을 때 맨 먼저 그를 찾는다.

마을이발관 C 씨는 자신을 사장으로 불러주기를 은근히 바란다고 했다. 당사자가 듣기 좋아하는 것으로 불러주면 그만이지만 쉬 내키지는 않는다. 수십 년을 1인 사업장으로 운영해 왔는데, ‘사장님, 사장님’ 하는 것도 좀 어색하지 않나.

나는 그의 말을 주로 듣는 입장이지만 입의 쉼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불쑥 말을 섞는다. 당신이 90 정도 말했으니 10 쯤은 들어줄 만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 이발사 얘기를 해 주었다.

그에게 근 10년 정도 머리를 맡겼었는데, 이사를 오면서 걱정이 따르게 되었다. 이발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 맞는 이발관을 만나야 할 텐데... 그런 염려 끝에 만난 사람이 지금 단골 이발관 C 사장이다.

인근에 몇 개의 이발관이 있다. 이곳으로 발걸음을 닿게 한 데는 신의 가호가 있었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전에 살던 마을의 그 이발사는 이 일을 그만 두고 도보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SNS를 통해 알았다.

C 사장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한참 뜸을 들였다. 이럴 땐 듣는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이야기를 빨리 해 줬으면 하고 마음을 졸이게 된다. 이웃 교회 장로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분이라고 했다.

부인은 권사로 부부 금실이 좋을 뿐 아니라 자녀들도 잘 키워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아들 중 한 명은 주의 종으로 부름받아 목회를 하고 있다. 이 장로님은 지금 구십을 바라보는 연치를 갖고 있다.

팔십을 넘으면서 예배에 빠지는 날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이치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든다. 이발관 C 사장도 이런 장로에 대해 '안 됐다'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몸집은 작지만 힘이 장사여서 농사일도 몇 사람 몫을 해냈다.

이 장로님은 C 사장이 경영하는 이발관의 오랜 단골이다. 이발관 개업할 때부터였다고 하니 30, 40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이발을 할 때마다 요금을 현금으로 준비하여 빈틈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가령, 이발 요금이 4천 원 할 땐 1천 원짜리 넉 장을, 또 7천 원 할 땐 거기에 꼭 맞게 돈은 준비해서 줄 만큼 꼼꼼했다. 오고 가야 하는 거스름 돈에 대한 서로의 불편함은 없애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이발하는 정성에 비해 요금이 저렴하다고 생각해 거스름 돈을 돌려받는 미안함을 예방하자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장로님이 나이 80을 넘기고부터 이발 요금에 대해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오는 바람에 돈을 못 가져왔다, 깜박하고 그냥 왔다, 집사람이 뒤에 갖다줄 것이다 등의 이유를 대며 번번이 이발관 문을 쌩하고 나섰다. 평생 단골이고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여서 그렇겠거니 했다.

예사로 여겼다는 말이다. 헌데 얼마 전, 장로님 이발 요금으로 인해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할까 말까로 망설였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장로님의 이발 요금이 세 번 밀렸다. 모두 합해 4만 8천 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로님은 집사람이 곧 지불할 거라면서 그냥 이발관을 나갔다.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요 모습이어서 좀 의아하게 여겨졌다. 경우가 바르고 사람 좋다는 말을 들은 그였는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장로님이 이발관을 나간 지 한 시간쯤 뒤 장로님의 부인되는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로님에게서 이발 요금을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C 사장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C 사장의 대답에 권사님은 길길이 날뛰며 험한 말까지 섞어 남편 장로를 비난했다. 권사님은 밀린 남편의 이발 요금을 손에 꼭 쥐어 주었다는 것이다. 요즘 와서 거짓말하는 빈도수가 많아졌다며 내심 무척 속상하다고 했다.

권사님은 합쳐서 4만 8천 원의 금액까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니 만 원짜리로 달라고 해서 다섯 장을 주었다. 권사님은 젊은이들이 쓰는 ‘배추 이파리’라는 은어까지 썼다.

미안하게 2천 원 거스름돈을 어떻게 받느냐고 해서 만 원짜리 넉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 석 장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뒤에 자기가 계산할 거라고? 혼몽하기는 권사님보다 이발관 C 사장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황금시장의 한 식당에 들렸다. C 사장은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작은 텃밭 하나를 관리한다. 고추며 호박 가지 등을 친환경 작법으로 직접 지어 자급자족하려는 생각에서다.

호미 등 농기구가 낡아 새것으로 바꾸기 위해 시장을 나왔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시장기가 몰려왔다. 종종 이용하는 순댓국집을 찾았다. 주문한 식사가 나와서 막 숟가락을 들려고 할 때였다.

식당 안쪽 테이블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하던 젊은이가 인사를 해 왔다. 젊은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쉰을 넘어 그 중반에 와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지금 농촌에선 이즈음 나이의 사람은 젊은이로 통한다.

이 사람은 자기 마을 청년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노총각이다. C 사장의 아들과 친구이기도 해 부담 없이 대하고 있다. 젊은이는 물론 C 사장 이발관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구릿빛 얼굴에 건강미가 넘친다.

젊은이는 혼밥하는 C 사장이 좀 안 돼 보였던지 먹던 밥과 국 그릇을 들고 C 사장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지나간 일들을 화두에 올렸다. 농촌 생활이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사인머스켓의 가격 추락으로 재미를 못 봤다는 이야기, 소 럼피스킨병이 별 피해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라는 이야기, 지난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피해입은 농가가 있다는 이야기 등 주로 농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젊은이는 치매의 진전이 눈에 보이는 그 장로님과 같은 마을에 산다. 밀린 이발 요금 얘기는 쑥 빼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장로님 안부를 물어보았다. 젊은이의 설명도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젊은이는 주치의라도 되는 듯 장로님의 병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부인 권사님도 치매를 피하지 못하고 노부부가 같이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C 사장에게는 금시초문의 말이다.

C 사장에게 갑자기 혼돈이 일었다. 장로님은 부인이 이발 요금 계산할 거라고 했고, 부인은 밀린 이발 요금 전부를 남편의 손에 들려 보냈다 했다. 시장통 순대국집에서 젊은이를 만나기 전에는 치매 앓는 장로님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부인도 치매라면? 정확한 금액까지 부인 권사님이 말하는 것으로 볼 때... 그것은 아니겠지!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 마치 불행한 치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동시에 마음이 아려왔다.

이발 요금 5천 원 할 때 나는 C 사장의 마을이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7천 원을 거쳐 9천 원으로 인상되었고, 그 요금이 상당히 긴 기간 이어졌다. 그때 나는 1만 원 권 지폐를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마음에 쏙 들게 깎아 주는 C 사장의 기술과 정성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1만 2천 원이다. 9천 원에서 1만 2천 원으로 인상할 때 그의 고민이 적지 않았다. 처음엔 1만 원으로 천 원 인상을 생각했다.

고객이 모두 동네 아는 사람들이고 넉넉지 않은 서민들인데 1만 2천 원은 너무 많이 올린다는 자책감이 따랐다. 하지만 1만 원에 고정시키면 인상 요인이 생겨도 올리기가 어렵다는 점을 C 사장은 감안했다.

5천, 1만, 2만 등의 매듭 요금은 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 C 사장은 십 대 중반부터 이발 가위를 잡아서인지 서민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긍휼의 마음도 남 못지 않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지 않았다면 그도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발 가위가 아닌 펜대를 굴리며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못 배운 한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 비슷한 말을 내게 쏟아 놓은 적이 있었다.

혼자 사는 연로한 분이나 장애인 등 어려운 사람에게는 이발 요금을 받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분기별로 1년에 네 번 정도, 이발관 쉬는 날을 이용해 산간벽지로 이발 봉사를 나간다.

어려움을 헤쳐온 사람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배움에 대한 한이 뿌리 깊어 통신강좌로 중등 과정 검정고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지의 나약 탓으로 결과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이발에도 장인(匠人)이 있다면 C 사장 같은 사람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식으로 해 달라는 주문이 없어도 두상(頭像) 형태를 보고 거기에 가장 맞는 스타일로 두발(頭髮)을 가지런히 정리해 준다.

손님은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손님은 이곳에 와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다. 그만큼 편안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발’하면 그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이발을 해 왔으면서도 또 기술과 정성이 뛰어남에도 이발사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처음 참석하는 모임에서 자신을 농사짓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이발사가 아닌 C 사장으로 불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오래 전이다. 대학 은사가 수필집을 하나 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소회를 맛깔나는 문체로 서술해 놓은 책이다. 대학 구내 이발관을 운영하는 분의 이야기도 거기에 나온다. 몰입도가 높은 수필집이다.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는 대학교에서 학문 연구와 무관한 이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심한 자괴감을 갖고 있다.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그때 이분은 누군가로부터 생각의 각도를 조금 틀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생각을 조금 비트니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값없진 않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돋보이는 사람이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니 돋보이는 사람이라는 확신 같은 것이 몰려왔다.

내용의 대강은 이렇다. 그 대학을 거쳐 간 저명인사가 한둘이 아닌데, 그들이 모두 자신이 운영하는 구내 이발관 고객이었다. 그 중엔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도 있고 장‧차관은 물론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많다.

그분들이 모두 자기에게 '볼때기'(수필집의 단어를 그대로 쓴다)를 잡혔던 사람들이다. 이발을 하고 면도할 때 '볼때기'를 세게 당겨도 가만히 있고, 비틀어도 아무 말 못 한다. 사회에선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나.

맞는 말이다. 그 누가 고관대작들의 볼을 마음대로 당겼다 놓았다 할 수 있느냐 말이다. 듣고 있던 C 사장의 얼굴에 화기(和氣)가 돌았다. 그 기운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정의 얼굴이 아니라 긍정의 표정임은 분명하다.

어떻게 짐작할 수 있는가. C 사장이 이야기를 들은 후 머리를 감길 때 또 머리 뒷손질을 할 때도 더욱 정성이 엿보였다. 다른 손님이 들어 올 때에도 그의 친절 지수가 표나게 올라간 데서 알 수 있었다.

작가 이명재. 소설 '그 열매, 진주보다 더 아름다운' 외 다수

연말의 분위기는 아쉬움이 지배한다. 침체된 경기로 올해가 더한 것 같다. 이발관을 나오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금세 함박눈이라도 퍼부을 것만 같다. 자연이 통째로 흰 눈에 덮인다면...

어디선가 잔잔한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올드 랭 사인'이었다. 한 해의 모든 짐을 지고 있는 듯한 곡이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2023년. C 사장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다(이명재 作).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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