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詩 / 권병대

마음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먼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일 년 열두 달 날아온 시간이
조각조각 부스러져
온 세상으로 흩어져 버리고

새로운 깃털이 삐죽삐죽 돋아나
한 해의 끝자락을 덮기 시작하자
물 속에 잠긴 한 해가 다시 살아난다.

돌고 돌면서 멈추지 않는 세월이
가던 길에 떨궈놓은
시간의 잔재들만 발끝에 차이는데

어디를 향해 가는 세월인가
오늘 걷는 이 길이
한참 낯설다.

* 권병대 시인은 시가 지녀야 할 성격을 가지런히 갖고 있다. 하나는 단어가 쉽다는 것이고, 둘은 정형성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정형성은 시 전체로 볼 때, 행과 연의 장단이 조화롭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 언어의 압축과도 관계가 된다. 권 시인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는 연말과 연시의 구분이 명확하다. 인간이 정한 책력 때문이지 연면히 이어지는 시간임에도 가고 오는 것에서 뽑아낸 이원적 심상이 뚜렷하다. 쪼그라드는 것은 가는 해이고, 손에 잡힐 듯한 것은 곧 올 새해이다. '날아온 시간'이 '부서져' '흩어져 버리는' 것은 지는 해의 시적 표현이다. '새로운 깃털이' 한 해를 '덮기 시작하자'  '물 속에 잠긴 해가 다시 살아난다' 떠오르는 새해의 표현이 명징하다. 한 해의 바톤 터치를 이보다 더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을까? 시간에 직면해 살아가는 인생인데(4연), 마치 목적 없이 거니는 '나그네'처럼 딛는 길이 낯설다고 하소연한다. 이건 시인이 우리를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서니 없었던 주름이 한 줄 얼굴을 장식하려 한다(耳穆).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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