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지금은 용장보다 덕장이 필요한 때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얼마 전 지역 국회의원이 책자 형식의 의정보고서를 보내왔다.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싸운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치 싸움닭의 무용담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의정보고서를 읽고 지역 신문에 소감을 기고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지금은 싸움닭이 아니라 중재자가 필요한 때'. 투쟁과 갈등을 야기하기보다 협치를 강조한 글이었다.

약관의 한동훈이 여당인 국힘당 비대위원장으로 변신했다. 국무위원이 과도기 없이 바로 여당 대표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이 시점에서 왜 한동훈인가에 대해 의아했다.

행정부는 국가기관이다.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여당 지도부보다 더 공격적으로 야당을 대해 싸움닭 중의 싸움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앞으로 협치는 물 건너갔다며 야당은 혀를 찬다.

향후 여야 앞에 펼쳐질 일은 뻔하다. '사즉생'의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왜 한동훈을 여당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혔느냐 하는 것이다.

몇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내년 총선을 위한 승부수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연달아 내지른 헛발질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에서 소수 여당을 벗어나지 못하면 정권 유지조차도 어려워지리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협치는 국민을 위하는 길이고 투쟁으로 야당을 제압하는 것은 정권을 위한 길이다.

지금을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인식한 윤 대통령이 젊고 유능한 한동훈, 자신의 아바타로 불리는 사람을 당 대표로 선택한 이유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쯤이야 버텨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다.

"비대위원장에 한동훈 추천"(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이 2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대위원장에 한동훈 법무장관을 추천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3.12.21 hama@yna.co.kr

대통령도 검사 출신, 여당 대표도 검사 출신. 대통령실도... 이런 적이 우리에게 과연 있었던가? 이런 정치 구도는 검찰공화국에 한 발 더 근접해 있다는 말이 된다. 당장 내년 총선을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동훈을 윤석열 아바타로 보고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의 아바타는 독자적 판단을 할 여지가 그만큼 좁다는 뜻이다. 내년 총선에 검찰 출신들을 대거 발탁, 공천할 가능성도 커졌다.

기존 정치판에서 한동훈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다. 정치하는 동네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나이를 기준으로 50대로 물갈이 공천을 하는 것 정도이다.

이것은 민주당 및 야당에 굳건히 성채를 쌓고 있는 386세대를 견제하는 데에도 유용한 프레임이다. 문제는 여당에서조차 순순히 받아들일 소지가 없다는 점이다. 어렵게 쌓은 정치 이력을 타의에 의해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더하다. 검사 출신은 윤석열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분위기다. 한동훈을 윤석열과 같은 고리로 생각한다. 그의 여당 비대위원장 지명은 윤석열 독단 정치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야당에 지지 않으려고 사사건건 부딪히며 법무장관 임무를 수행했다. 항간에서는 법무장관이 아니라 여당의 법무팀장이란 비아냥도 있었다. 그의 앞길을 가시밭길로 만든 것은 한동훈 자신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그가 이재명을 제치고 1위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공신력 있는 조사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극우 언론의 한동훈 띄우기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그가 정말 대통령 후보까지 생각했다면 처신에 보다 신중해야 했다. 안하무인식 행보가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콘크리트 지지층이야 어떻게 하든 지지하겠지만 정치라는 게 지지자만 갖고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어떤 종류이든 선거는 중간층 확보가 관건이다. 진보와 보수의 고정표는 각기 확정표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중간표를 많이 가지고 오는 사람이 당선에 가까이 있다.

과연 한동훈이 중간표를 얼마만큼 가져올 수 있을까. 윤석열의 극단 정치는 서민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윤석열과 한 고리인 한동훈이 여당 비대위원장이 되었다고 해서 등 돌린 서민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여기서 서민은 대부분 중간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의 비대위원장 임명이 보수-극우 지지층을 다지는 효과는 있겠지만 중간층을 끌어내는 데엔 한계가 따른다.

민주당의 현 상황도 절대 '맑음'이 못된다. 국힘당에서 정치 경험이 없는 약관 한동훈을 세워 젊고 참신함을 부각시키는 것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여당 과오의 열매만 따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전분열(敵前分裂)을 막는 것이다. 내년 총선 정국을 백화쟁명(百家爭鳴)으로 예상했었다. 민주당과 국힘당에 더해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중심의 신당을 생각했다.

한동훈의 국힘당 비대위원장 임명으로 이준석 신당은 동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되었다. 국힘당의 전력 손실은 없는데, 만약 민주당이 분열한다면 내년 총선의 결과가 유리하게 나올 수 없다.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분열로 실기했던 적이 많았다. 민주당에서 이낙연을 끌어안고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DJ 이전 30년 군사정권과 같이 검찰 정권이 장기간 이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끝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 후보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다. 기왕 정치에 입문했으니 사려 깊게 생각하고 진중하게 처신해서 우리 정치에 기여하기 바란다. 지금은 용장이 아니라 덕장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