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정치 실종의 시대다. 그래도 국민은 잘도 헤쳐나왔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정쟁만 있었지 협치는 없었다. 공의와 상식을 외쳤지만 그것이 막말로 전화되어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팠다. 정치권, 콕 집어 말하면 권력 쥔 자들의 행태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대통령이 정치에 서툴면 참모들과 여당 지도부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도리어 할 술 더 뜬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심기 살피기에만 바쁘다. 이건 대통령을 헤어나기 힘든 곳으로 밀어넣는 꼴이다. 공동 운명체라는 걸 몰라서 저러는 걸까.

대통령의 외국 방문도 너무 잦다. 국익을 위한 방문이라고 강변하지만 국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국민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항간에는 국익이 아니라 국민 혈세를 갖고 외국 여행 다니는 대통령 부부라는 비아냥 소리가 빗발친다.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선물 사건은 이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명품 좋아하는 대통령 부인인지라 방문지에서의 명품 쇼핑 코스가 꼭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번 우크라이나 방문 때는 현지 신문에 그 장면이 잡혀 우사를 당한 적도 있다.

민주공화정과 독재 정권의 다른 점은 힘의 균형과 견제 기능 유무에 있다. 지금 정권은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지금 정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삼권 분립을 부정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사법부와 입법부를 권력으로 휘어잡아 제 기능을 못하게 한다.

사법부의 핵심 인사를 임명권자의 고유권한이라며 모조리 친정권 인사로 채운다. 이런 일을 정권의 입맛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후에 치르야 할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쯤은 정권 잡은 이들도 모르지 않을 터. 마약 같은 권력은 사리 판단까지 흐리게 한다.

그나마 국회가 여소야대 구도여서 망정이지 이것마저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권은 내년 총선에서 여대야소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발목 잡힌 대통령이 일 좀 할 수 있게. 일방통행의 독선에 날개를 달아달라는 것밖에 안 된다.

만약 지금의 정치 구도가 여대야소였다면 독재라는 망령이 과거 유신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스멀댈 것이다. 지금도 국회에서 결의한 사안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시키고 있지 않나.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권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이 절대 요구되는 권력 기관의 장(長)에 친정권 극우 인사들을 배치한다. 권력 보위를 위해 철옹성을 쌓고 있다. 권력에 반하는 세력은 갖은 수단방법 다 동원해 내쫓고 만다.

검찰, 감사원, 방통위, 국민권익위 등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공수처까지 극우 인사를 앉히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수작 아니고 뭔가! 정권이 끝나면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줄을 정말 모르고 하는 짓일까.

하지만 그 피해는 당장 국민의 몫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특권이 득세하는 세상은 후진국형 사회이다.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지금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들 한탄한다. 역사가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상대방 죽이기 정쟁에만 올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고 오직 개인의 이불리(利不利)만 타산하는 정치가 활개를 친다.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년 4월이 총선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새판 짜기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정치란 아메바와 같아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합종연횡(合從連橫)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년 총선이 우리 정치의 변곡점이 된다는 사실이다.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내년 총선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더욱 무겁게 자리한다. 투표가 총칼보다 강하다는 구호는 전혀 빈말이 아니다. 국민은 이것을 최후 무기로 소지하고 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란 말도 있지 않는가.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된 사람... 하지만 지금은 조직 아닌 개인(대통령 부부)에게 충성하기를 바라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통령의 눈 밖에 나 ‘팽’당한 여권 지도부를 보니 안쓰러운 생각도 들고...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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