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영화를 보고 왜 화를 내? 정말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죄 없는 아내에게 화를 냈다. 이유가 뭘까. 소설이 그렇지만 영화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때 독자와 관람객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다. 전두광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군이 이태신을 중심으로 한 진압군에게 승리한다. 불의가 승리하고 정의가 패배하는 것은 인간 심리를 헤집는 일, 화를 재촉기 쉽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화'는 여기서 촉발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서울의 봄'이다. 그러나 내용은 1980년 잠깐 만개하려 했던 서울의 봄과는 관계가 멀다. 이 영화는 12.12쿠데타 발생 9시간의 긴박한 사태를 담은 것이다.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은 '12.12 쿠데타' 아니면 '12.12 군사 반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제목들은 다큐멘터리 기록물의 제목엔 어울릴지언정 픽션이 가미된 영화 제목으론 타당하지 않다. 영화 제목은 좀 환상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관람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또 정치적 민감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영화 중 전두광이 한 말 "(군사 반란은)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야!"처럼 아직도 그 사건에 관계한 사람들이 살아 있고, 그 후예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마당에 이 영화에 합당한 제목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심의 결과 찾아낸 것이 '서울의 봄'이다. 사실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2.12쿠데타가 아니었으면 서울의 봄이 왔을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서울의 심장부에서 대한민국 군인끼리 총격전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쿠데타군이 진압되었다면 1980년 서울의 봄은 화려하게 만개했을 것이다.

12.12쿠데타는 그러니까 서울의 봄에 부정 기제 즉 서울의 봄을 막은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현대사에 좋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 영화가 제목을 '서울의 봄'에 낙점한 이유의 일단을 알 수 있으리라. 역사에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큐성 영화에서 또 고민되는 것이 배역이다. 그것은 현대사의 사건을 다룰 때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사람들이 등장 인물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 사람 중 2명은 뒤에 대통령이 되었고 그 외 다수의 사람들도 성공한 쿠데타의 전과물로 고위 관직을 꿰찼다.

전두광(황정민, 전두환 역)을 비롯해 노태건(박해준, 노태우 역), 대통령 귄한대행 최한규(정동환, 최규하 역), 국방장관 오국상(김의성, 노재현 역) 및 그 외 등장인물들도 면밀한 검증 끝에 결정되었다. 사실성이 뒷받침되고 있어서 몰입도를 높인다. 김성수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계엄사령관 정상호(이성민, 정승화 역)도 인물 안팎의 모습에 닮은 데가 많다.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정병주 역), 육군본부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김진기 역)도 무난한 인물 선택이다. 다만 수경사령관 이태신(정우성, 장태완 역)만이 실제 인물(장태완)과 근친성이 다소 떨어진다. 허나 주인공이라는 입지 때문에 보아 넘길 만하다.

이 영화가 해피 엔딩이 아니어서 관람객에게 화를 선물했다고 했다. 그것의 실내용은 아군끼리 그것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데 있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아픔이 컸다. 미소 두 강대국을 배경으로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짓을 저질렀다. 야만에 가까운 짓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서울의 심장부에서 아군끼리 총을 겨누고 권력을 송두리째 삼키려 해? 국민 혈세로 지탱하는 군대가? 정말 허탈하고 화가 치민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9시간의 그 날 사태를 시시콜콜 기록할 필요는 없겠다. 영화를 보면 다 해결될 문제니까.

사내들끼리의 대결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여군은 한 명도 안 보인다. 따라서 다이내믹하지만 감성의 터치는 약하다. 그 약한 부분을 메꿔준 것이 이태신 수경사령관 부인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집에도 가지 못하는 남편(이태신)을 위해 옷가지를 챙겨서 사무실로 찾아가는 아내.

이태신이 진압작전의 마지막을 수행하기 위해 출군한다. 아내에게 마지막이 될지로 모를 안부 전화를 한다. 그때 아내가 한 말 "여보, 별일 없는 거죠? 식사는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쿠데타군 진압을 위한 마지막 출군은 죽음 아니면 생(生)이다. 하지만 군의 대부분이 쿠데타군에 가담했다. 이태신에겐 죽음이 더 가까이에 있다.

그때 나눈 아내와의 전화 통화. 이태신에게는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가능성이 많다. 별일 없냐는 물음에 '그럼 그럼'이라고 대답했지만 그 속에 아내에 대한 미안함, 못다한 사랑이 녹아 있다는 것을 관람객은 안다. 그리고 울컥함이 뒤따른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대목이 영화 '서울의 봄'의 압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태신 부인의 짧지만 진정한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사내들의 힘 겨루기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아주 밋밋한 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몇 장면이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나 할까.

'서울의 봄' 흥행 기세가 만만치 않다. 천만 관객까지 넘본다고 하니. 영화의 흥행은 절대 요행이 아니다. 넉넉한 제작비, 감독과 배우들의 열정, 시대 조류와의 부합성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것 없이는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서울의 봄’이 여기에 해당한다. 140분이 금세 지나간다. 관람해 보시라.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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