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화(아동문학가)

얼음도 얼고 마음도 얼어가는 차가운 겨울 속에서 ‘봄’이 왔다. ‘서울의 봄’이다. ‘끓어오르는 뜨거운 봄’이 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분통의 심박수로 온몸이 뜨거워지는 영화’라고 표현한다.

영화는 ‘조금 전에 박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된다. <서울의 봄>은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피격 절명 후,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군사반란이 전개된 9시간 동안의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빈틈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냈다. 실제 있었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기에 결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곧 스포가 되는 영화다.

영화는 이렇게 소개된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 그날,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 내 사조직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인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과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 일촉즉발의 9시간이 흘러가는데... 목숨을 건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 오늘 밤 대한민국 수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펼쳐진다.”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이 한남동이었는데, 외무공관을 통제하더니 총소리가 나더라. 너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제 인생에 지워지지 않은 선명한 기억이다. 나중에 그날이 중요한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에는 숨겨진 이야기라 궁금했고 저 나름 상상을 했는데, 나중에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이 공개되고 그걸 보면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다니 놀라움과 충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영화로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제가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건이라 내가 그날 근처에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말했다. 그래서 ‘서울의 봄’시나리오를 받는 순간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라 자신이 없더라. 불법적으로 승리한 이야기를 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싶더라”고 고백했다.

흥행에 치명적이라는 ‘고구마 100개’의 영화인데도 무서운 기세로 관객을 모으고 있다.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씨네21 박평식 평론가의 한 줄의 영화평도 귀에 담아 두어야겠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 사악한 바보들에게”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말이 떠오른다. ‘하늘의 도리에 순종하는 사람은 흥하고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라는 맹자의 말씀도 떠오른다. 이 말씀을 우습게 아는 권력이 많다. 어떤 권력이든 민심을 하늘같이 알고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그런 선한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해의 끄트머리 달이다. 올해 역시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났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누군가는 줄곧 우리를 속였고, 누군가는 여전히 우리를 속이려 든다.

‘눈물은 빨리 마른다’(Lacryma nihil citius arescit)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이 영화는 ‘눈물은 빨리 말라도 기억은 붙잡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역사를 반복하여 겪는다’라는 말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영화로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각본을 쓰고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노력, 연출력과 열정에 대해 감사드린다. 그리고 더 없는 열연으로 우리의 마음을 끓게 한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모든 배우들과 수고하신 관계자들에게도... 

여상화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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