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詩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자연 현상을 빗대어 표현하는 데엔 문학 만한 것이 없다. 상징의 비유법을 사용하는 시가 가장 좋다. 독재의 사슬에 신음하는 사회를 백색 계엄령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색은 가녀린 색이면서도 또한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색이다. 온누리가 하얀 눈에 제압되어 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이다. 절망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희망의 소재를 만들어 낸다. 굴뚝새가 그 주인공이다. 흑암의 세계에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눈보라를 헤치며 찾아간 곳이 뒷간. 경험한 사람은 알리라. 용무가 급할 때 뒷간은 안방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된다. 어른에게 혼날 때 피할 수 있는 곳도 뒷간이다. 뒷간은 도피성이 된다. 솔개로부터도 안전한 곳,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이 있어서 든든하다. 눈보라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도 내리쬐는 햇볕을 이기진 못하리라. 12.12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장안의 화제가 될 때, 최승호의 시 '대설주의보'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24절기 21번째인 대설(大雪)이로군. 백색의 계엄령이 없는 대설!(耳穆)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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