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아직도 전광훈을 찾는 동네가 있나 보지요?"

가까이 지내는 한 후배가 냉소적으로 뱉은 말이다. 달포 전 만났을 때 전광훈 때문에 기독교인이란 말을 하기가 뭐하다며 요즘은 그냥 조용히 지낸다고 했다. 전도에 열심인 사람이었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신앙도 사회 생활도 모범적이어서 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렇지, 그 동네 아니면 그가 발붙일 데가 만만치 않겠지! 그 동네가 전광훈의 생명을 연명시켜 주고 있는 꼴이라니!"

나에게 눈을 주지 않고 동년배인 다른 배석자를 바라보고 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 동네는 TK지역을 두고 하는 말이다. 4일 경주에서 전광훈 집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집회 명칭이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란 긴 단어 나열로 되어 있지만 전광훈을 앞세운 태극기집회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모여 그 나름의 집회를 하는 건 내가 관심 둘 바 아니다. 하지만 장관을 그만 둔 이가 첫 정치 행보로 그곳을 찾아 자신의 이념과 신앙을 토로했다는 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사전 선거 운동이란 말을 들을 소지도 없지 않다. 그도 이 정도는 알 것이다.

난 원희룡이 크리스찬인 것을 전혀 몰랐다. 대학 시절부터 그의 삶을 죽 지켜봐 오면서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노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현장에 들어가서 활동을 할 때, 신앙 이전에 정의를 외치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호흡하는 모습에서 어렴풋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가 지녔던 가치를 포기하고 기득권 대열에 합류하고 나서는, 뭐라 그럴까 의도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그의 오버 액션(지나친 언행)이 보기에 무척 안쓰러웠다. 생각과 추구하는 지향점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에서는 이런 것을 '변절' 또는 '훼절'이라고 해서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원희룡을 비롯해 무수한 훼절자들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가 되고 싶어하는 심리로 이들은 무장되어 있다. 변화를 꾀하는 진보 진영에서 활동하다가 극우보수 진영으로 활동 무대를 바꾸었으니 그쪽 추수(追隨)의 오버 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테니까.

원희룡이 전광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것도 이런 계산의 산물로 봐야 한다. 내년 총선에 이재명과 맞짱 뜨겠다고 호언하는 것도 정치적 타산 속에 나온 발언이다. 중도는 자신 있으니 극우보수 표만 가져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생각은 자유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두 가지만 지적하자. 원희룡이 긴장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은 중도표가 원희룡 자신 또 나아가 국힘당으로 가기 쉽지 않은 지금의 정치 지형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념 변색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회색 분자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희룡은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지금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과 맞장 뜨겠다는 것도 그렇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맞장 뜨는 건 자유지만 이렇게 될 때 '동일시 효과(identification effect)' 이외의 소득을 기대하긴 어렵다. 야당 대표이자 차기 대선후보 국민 선호도 1위인 사람과 붙었으니 '나도 꽤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야' 이 이상이 아니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훼절한 자들이 대우 받기 어려운 우리의 정치 풍토다. 항간에 들려오는 말로는 내년 4월 총선을 국힘당에서는 원희룡-한동훈 투 톱 체제로 치르겠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야당으로서는 그야말로 '땡큐'다. 훼절자와 정치신인의 억지 조합은 빈 구석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희룡과 전광훈, 어딘지 어색한 것 같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찰떡 궁합으로 보이기도 한다. 선거 결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조합이다. 하지만 원희룡에게서 기존 정치인의 참된상이, 한동훈에게서 신인 정치인의 참신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희룡이 장관직을 내려 놓은 날, 극우의 땅 경주에서 열린 전광훈의 태극기 집회에 달려간 모습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안쓰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전광훈, 목사라는 직을 갖고 정치의 문을 끊임없이 노크해 온 사람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고 공교롭게도 그의 입지가 확 줄어들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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