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좀 늦게 도착한 김용덕 선생까지 참석한 숫자입니다. 가시적 이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러 모을까요.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대구에서, 삼척에서, 나주에서, 김천에서 만사 제처두고 몸을 움직인 것은 '사랑' 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점심 시간에 있었던 도대호 딸 결혼식에 갔던 사람들이 모판을 옮기듯 그대로 왔더군요. 참으로 감사할 일이지요. 하루를 온전히 비워 둔 셈입니다.

30명의 대군사가 모일 음식점 잡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총신대 교수로 일하는 정규훈 선생이 아니었으면 많은 애를 끓여야 했을 것입니다.

모임 시각 오후 6시. 15분 전에 도착했는데, 빈 좌석이 몇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녹지 모임'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겠지요?

우리의 모임은 형식도 없습니다. 특별한 순서도 따로 없습니다. 3년 동안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끈 성현숙 선생이 그 자리를 정규훈 선생에게 이양(?)했습니다.

사실 모임이 이 정도로 활성화되는 데엔 성 회장님의 공이 큽니다. 수고한 회장에게 준비한 꽃다발이 전달되었습니다. 신임 회장의 소개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음식도 풍성했습니다. 그룹을 지어 장강(長江)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뇌리에서 사라진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쏟아놓은 기억들 중 창피한 것도 없지 않았지만 대화의 장에서는 창피함도 면책되었습니다. 사랑의 무게에 모든 것이 눌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 기수별로 기립 소개할 때의 압권은 3기와 5기였습니다. 참석률도 높았을 뿐 아니라 기세가 등등해서 부러움을 샀습니다. 다음 모임엔 다른 기수도 기대해 봅니다.

오늘 식사비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자그마치 30명 분이니까요. 참석률 1위를 기록한 5기가 자원해서 부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초유의 일입니다.

감동 받은 다른 기수들이 다음 모임은 자신들이 식사비를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선한 마음은 이렇게 전염되는 모양이지요? 사랑의 확산 현상입니다.

밤 9시가 가까울 때, 우리는 녹지 교가를 제창하고 모임을 파했습니다. 40여 년 전에 불렀던 교가를 함께 합창할 수 있는 것은 애정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녹지 정신'은 우리 삶에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상적 개념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기(利己)보다는 이타(利他), 강자 편향보다는 약자와 손잡고 사는 것...

신경림의 시가 떠오르는군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버렸겠는가. '가난한 사랑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하지만 부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요. 우리는 무한한 정신적 부자 아닙니까. 사랑이 흘러 넘치는 부자 아닙니까. 이 사회를 흥건히 적시려는 의기투합의 결정 아닙니까.

송년 모임이라고 다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녹지의 송년 모임은 우리 자신을 무장해제시켜줘서 좋습니다. 어려울 때 만나 동고동락한 야학 동지들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발행인 이명재 記).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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