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마음을 씻을 때가 있습니다. 아등바등 혼자 살아온 버거움에 빠져 있다가 이웃,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돌아봐야 한다는 다짐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연말 이때쯤, 올해는 조금 이른 것 같네요. 서로 만나 천국을 꿈꾸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의 삶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는 곳...

사회복지법인 누리복지재단 / 한걸음어린이집에서 2024년 달력 그리고 지난 1년 행사 사진첩과 엽서를 한 세트로 묶어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매년 비슷한 소회를 반복합니다.

한걸음어린이집에서 보내온 2024년도 달력

"돕지도 못하고 함께 하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 나에게까지 아이들이 정성이 담긴 귀한 선물을 보내주다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2024년 달력도 아이들의 작품으로 열두 달을 채웠습니다. 작품이 예술적으로 뛰어나거나 세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동심을 꾸밈없이 그려낸 순진무구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에 이것보다 더 좋은 포인트가 있겠어요?

한걸음어린이집에서 만든 2023년 행사 사진첩

사진첩의 표지엔 어떤 표어가 들어가 있는 줄 아세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한걸음어린이집이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승자독식이 너무 자연스러운 세상이어서 표어가 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 사진첩 속에는 한걸음어린이집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의 한 해 생활이 빼곡히 실려 있습니다.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통합교육,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인권 존중과 생태 교육 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작품으로 만든 엽서 1

여기에 더해 한걸음어린이집의 특수 교육에 대한 자랑도 들어 있군요. 여러 가지 치료 공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지학습치료실, 언어치료실, 작업치료실, 감각통합실... 한 아동의 성장에 과학과 사랑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걸음어린이집은 지역 배타가 아니라 지역 친화의 길을 추구합니다. 사진첩에 소개되어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세상 강연회, 하나세상 영화제, 하나세상 작은음악회... '하나'가 강조되고 있는 것을 알겠지요? 자기 이익을 위해 찢어짐을 마다하지 않는 세상 흐름에 대한 항의의 몸짓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의 작품으로 만든 엽서 2

지역과 함께 하고자 하는 한걸음어린이집의 휘날리는 깃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별빛누리 축제, 해피누리 한마당, 해피누리 작품전시회... '누리'는 '세상(世上)'의 순 우리말이잖아요. '해피누리'는 '행복한 세상'이란 뜻인데, 모두 손잡고 도우며 걸어가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작품으로 수놓은 엽서가 동봉되어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과거를 잊지 말라는 메시지 같기도 하고... 소년소녀의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울 엽서 한 장을 놓고 밤을 새운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엽서로 소년의 순정을 다시 불태워 볼까요?

표준 엽서처럼 한 면이 반으로 나위어져 깨알깥은 글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며칠 전 신문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길거리에서 연로한 치매 앓는 노인이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한 직장인이 그를 부축하며 앉혔다가 자신의 외투를 입혀주고 총총히 사라졌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한걸음어린이집으로부터 선물을 한아름 받은 오늘도 따뜻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짐하는 게 있습니다. 사회의 온기를 식히는 사람이 아니라 더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귀한 선물을 보낸 한걸음어린이집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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