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레시피
                              詩 / 이상구

고삐 풀린 황소처럼 길길이 뛰던 더위
제풀에 나자빠져 잠시 숨 돌린 사이
이제나 저제나 하던
하늘 성큼 높아졌다

떠다니던 뭉게구름 그마저도 엷어져서
속살채운 벼 이삭 고개 숙인 세월 앞에
이런 날 기다렸다는 듯
메뚜기 춤을 추고

귀 따갑게 울었던 매미들이 떠난 자리
풀벌레 합창가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
또 다른 들녘의 세상
슬몃슬몃 깊어진다

* 백수(白水)의 고장 때문이리라. 김천의 시는 정형시 시조로 통한다. 시조를 변형한 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유시도 시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형식을 탈각한 시도 운율은 4ㆍ3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창작에 우리를 친다는 것은 한계가 될 것이다. 이상구 시인의 '가을 레시피' 3연으로 된 시조다. 각 연 종장을 살짝 비틀어 두 행으로 만들어 자유시를 연상케 할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가을 레시피' 적당한 단어 조합이다. 가을이란 도마 위에 오르는 단어가 가을 향취로 흠뻑 젖어 있다. '더위가 제 풀에 나자빠지고', '성큼 높아진 하늘', '뭉게 구름', '벼 이삭', '메뚜기', '매미들이 떠나고' '깊어지는 들녘 세상'. 정말 풍성한 '가을 레시피'다. 이 시만 읊고 있어도 배가 불러온다. 이런 풍성함이 나만이 아니라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함께 할 때 레시피의 의미가 배가되리라.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耳穆).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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