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해

         詩 / 권병대

여름에는 그리도 
재빠르던 해가
가을이 되자마자
늑장을 부리고 있네

내가 기다리기도 전에
창문을 두드리며
보채기를 시작하던
여름 나절의 해가

내가 먼저 일어나서
기다림에 수를 놓다가
지루해질 때까지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좋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오고 가는 사람은 좀 그렇지

* 권병대 시인의 시어는 쉽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데 부담이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팔순 넘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마치 솜사탕이 입에 녹듯이 살살 녹는다. 그런 가운데에도 시어가 청초하다. 이런 시가 좋은 시 아닌가!

제목이 '가을해'이다. '가을 해'는 두 단어가 결합된 것이어서 보통 띄어 쓴다. 하지만 권 시인은 찰싹 붙여 놓고 있다. 가을은 좋은 계절이되 짧은 게 흠이다. 왔다고 느낄 때 또 금세 사라진다. 시인이 '가을'과 '해'를 붙여 쓴 것은 좀 더 오래 붙들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리라. 또 근친(近親)하고 싶은 심리의 결과이지 싶다.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은 시 작법으로 자주 사용된다. 해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숨바꼭질하듯 숨고 찾는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영롱하다. 이 시의 주제연은 마지막 연이다. 필요할 때 있어 주는 것, 그것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 이것이 이타정신의 발현이요 실천이다(耳穆)

취재부  daum.net

취재부  daum.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