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아 지난 8월 28일 한국의 추도행사를 마친 우리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 소속단체들은, 다음 날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여러 시민단체가 준비한 조선인희생자추도행사에 참여해 연대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100년 전 간토학살이 시작된 같은 날 같은 저녁, 동아일보 기자의 악의적 보도를 시작으로 국내 보수언론들이 잇따라 윤미향의원에게 언론 테러를 가하고 한국측 추진위원회 인사를 반국가 반정부 세력으로 몰아가는 기사를 쏟아냈다.

외교부와 통일부,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반국가행위, 불법행위라는 딱지를 서슴없이 붙이고 있다. 마치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땅에서 조선인을 향해 덧씌워진 유언비어가 재현되는 모습이다. 100년 전 우리 동포들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땅을 빼앗기고 높은 소작료를 감당하지 못해 정든 땅과 가족들을 뒤로한 채,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들어갔다. 1923년 일어난 간토대지진으로 많은 동포가 생명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도쿄도는 불바다가 되었고, 너도나도 살길을 찾아 피난하던 때에 여기저기서 조선인을 모함하는 해괴한 헛소문이 돌아다녔다.

일본 화가 가와메 데이지(1889-1958)가 그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스케치'.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9월 2일에는 난데없이 계엄령이 발동되고,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헛소문을 사실로 둔갑시켰다. 일본 언론은 이에 발맞추어 마치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듯한 논조로 날조된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국가와 언론에 의해 조작된 ‘조선인 폭동설’은 잔인한 학살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간토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동안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에 나선 것은 재일동포들과 일본의 시민들이었다. 매년 9월 1일을 전후하여 도쿄를 비롯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 등 간토 일원에서는 간토학살 피해자들을 위한 수십여 개의 추모행사가 개최되어 왔다. 특히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은 1973년 이곳에 조선인희생자추도비가 세워진 이래 50여 년째 일본의 시민사회와 동포사회가 한 해도 빠짐없이 개최해 온 유서 깊은 행사다.

총련 또한 이 추모집회의 주최 중 하나이다. 간토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활동을 해 온 동포단체의 손을 일본의 시민사회는 기꺼이 맞잡고 연대해 왔고, 요꼬아미초 공원뿐 아니라 간토 일원 대부분의 추도식을 일본 시민사회와 동포들이 함께 준비해오고 있다. 한반도는 남북이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는 담장이 없기에 민단과 총련의 동포들을 자연스레 다양한 행사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윤미향 의원이나 한국의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 소속 인사들도 여러 재일동포와 같은 행사에 자리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추도집회에 참석한 것을 빌미로 반국가단체와 교류했다고 몰아가는 것은 그동안 간토학살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온 일본 시민사회와 동포들의 노력에 색깔론의 잣대를 들이대는 왜곡된 자세일 뿐 아니라, 조선인 학살피해자들을 추도하고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는 대의와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다.

간토학살100주기추도위원회 회원들이 한일 양국 정부에게 진상을 정확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사진=한겨레신문)

일본의 시민사회는 이번 100주년을 맞아 수십 년간 쌓아온 진상규명 노력을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행사장마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참석 인원이 많았고 열기와 진지함은 한국사회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일본의 언론 또한 100주기를 맞아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NHK는 특집 방송을 편성했고, 지역 언론들도 피해자를 위령하는 데에 지면을 할애했다. 일본의 문화예술인들도 영화를 제작하고 전시회를 여는 등 문화행사들이 줄을 잇고, ’헤이트 스피치‘ 집회를 막아내기 위해 도쿄도에 항의하는 긴급행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작 학살 피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할 한국 언론과 정부가 나서서 일본의 시민세력과 연대하기 위해 방일한 윤미향 의원과 한국의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 인사들을 색깔론을 앞세워 공격하고 있다니, 보수언론의 한 기자가 간토학살의 추모의 오랜 역사를 외면하고 색깔론만을 앞세워 쓴 기사를 시작으로 정부가 이에 반국가적 행태로 낙인을 찍고 여기에 국민의힘 인사들과 극우 언론이 또다시 종북몰이로 장단을 맞추는 이 상황은 진정 100년 전의 광풍이 재현되는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부란 모름지기 재외동포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땅에서 억울하게 숨진 6,661명을 위로하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지 못한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도 모자란 판에 지엽적인 것을 문제 삼아 일본에서 진행된 100주기 추도행사의 의의를 훼손하니 이는 억울하게 죽어간 간토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묻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단 한 번이라도 간토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연적이 있는가? 추도문이라도 발표한 적이 있는가? 그동안 일본 정부에게 학살책임을 준열하게 물은 적이 있었는가?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하지 못하고 외면했던 일을 한국의 시민사회, 재일동포들이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이제까지 진상규명의 끈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격려하고 후원을 해도 모자를 터인데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덧씌워 비난하고 탄압하다니 기가 차고 놀라울 뿐이다.

간토학살100주기추도행사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을 정부여당이 국회의원 자역이 없다며 제명할 것을 요구, 색깔론으로 몰아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대에 뒤떨어진 반공 파시즘을 되살려 ‘반국가행위’로 협박하는 민주주의 파괴적 작태와 일본의 식민주의 범죄 해결을 위한 운동에 유독 적대적인 정부의 행태야말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일부 극우 언론의 몰역사적인 마녀사냥식 보도에도 우리는 깊은 분노를 느낀다. 조선인 학살의 본질에 대해 취재하고 학살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꾸짖는 기사를 써야 마땅한 지금 어디로 공격의 화살을 겨눈단 말인가! 유언비어를 퍼뜨려 학살을 선동한 당시의 일본 언론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는 간토 조선인 학살의 본질을 똑바로 인식하고 이를 역사적 책임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색깔론을 앞세운 공격에 몰두하기에 앞서 간토 조선인학살의 본질을 밝히는 일에 사명을 다해야 한다. 덧붙여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행사 참석자를 반국가 행위로 모는 색깔론 이념몰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한국 정부는 간토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을 묻고 진상규명에 나서기 바란다. 나아가 국회는 간토학살 특별업 제정에 지혜를 모을 것을 강청한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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