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이렇게 직접 오셔서 응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

김천상무축구단 B 대표이사가 반색을 하며 인사했다. 스포츠는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닌 줄 알고 의외라는 기색이 읽혀졌다. 하지만 난 스포츠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동경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지체 장애인으로 어릴 때부터 늘 운동에는 열외였다.

학교 체육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는 대신 교실에 홀로 남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체육 과목 성적은 늘 중간 지점을 넘지 못하는 슬픈 아이였다.

뭐라 그럴까, 그런 점에 대한 반발 심리라고나 할까 아니면 대리 충족을 맛보려는 마음에서일까 중학교 때부터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하릴없이 열심을 보였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한국일보 자매지인 일간스포츠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서 읽었다. 동네 친구도 덩달아 스포츠 신문의 애독자가 되어 그것을 끈으로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가끔 그 친구와 동대문운동장에 직접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어린 악동들이 스포츠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기라도 한 듯 교만의 티가 흐른 것이 이맘때쯤이다.

고등학교는 서울의 축구 명문 J고를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따로 응원단을 조직해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에 꾀를 내어 편법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응원단의 일원으로 자원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전국 고등학교 축구대회가 대구에서 열렸는데, 거리가 먼 탓에 학교에서 응원단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붙들어 맬 수가 없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럭키 세븐'이란 말이 비문(飛紋)처럼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7명이 아니었나 싶다. 이 아이들이 수업을 빼먹고 간 크게 대구행을 결행했다.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책상 위에 책과 공책을 그대로 둔 채 악동들은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여 서울역으로 내달렸다. 저녁 경기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기차간에서 바람 소리에 얹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학교에서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까지 알게 되었으니까. '무단 탈영'에 해당 되어 퇴학은 아니더라도 무기정학 아니면 유기정학이라고들 입방아를 찧어댔다.

실 날 같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대회에 우리 학교가 우승컵을 거머쥐는 것이다. 그래서 무단 조퇴를 한 아이들을 1회성 해퍼닝 정도로 가볍게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도 학교와는 무관하게 아이들의 머리에서 나온 희망 섞인 가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날 밤 경기를 큰 스코어 차이로 이기더니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승으로 우승컵을 안게 되었으니.

그 일로 중징계를 당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이들의 바람대로 1회성 해퍼닝으로 가볍게 처리해 준 것이 분명하다. 무단 조퇴를 축구를 통한 애교심으로 본 것이다.

생활에 여유가 없던 탓이 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까지 해서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세 아이가 잘 커 줬지만 가장으로서 신경 쓸 일도 솔직히 적지 않았다.

마음은 원이로되 스포츠와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프로 야구니 축구가 생겼지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스포츠 영웅 중심으로 가끔 제목만 훑어보는 정도? 그런데 한 번 진하게 축구에 빠진 일이 있었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4강 신화를 쓴 그 월드컵이다. 밤을 새워가며 TV로 중계되는 경기를 시청했다. 우리나라 경기뿐이 아니었다. 전 경기를 망라했다.

우리 월드컵 팀도 이런 바람에 부응해서 4강 준결승까지 올라가는 귀염을 토해주었다. 어느 나라 팀이 이길 거라고 찍으면 신통방통하게 맞았다. 주위에서 나에게‘족집게 도사’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때 의미 있는 일 한 가지. 어른인 나도 그런데 유·초등학교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때 대도시에선 큰 종합운동장에 모여서 집단으로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며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장면들에 환호했다.

세 아이가 그런 흐름에 동승하고 싶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대전공설운동장으로 달렸다. 마을의 초등학생들을 다 태우니까 7,8명이 되었다. 아이들의 설레는 마음이 내게 전해져왔다.

수만 명이 운집한 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짝짝짝' 손뼉 치며 일제히 내지르는 소리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고마운 마음을 되새긴다.

전반을 1대 0으로 마쳤다. 축구 경기에서 자주 쓰는 일진일퇴(一進一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일방적이었다. 김천상무 선수들은 물오른 생선마냥 종횡무진이었다. 후반전에 세 골을 넣어 김천상무가 서울E랜드를 4대0 으로 물리쳤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휴식 시간, B 대표가 귀빈실로 나를 이끌었다. 그는 축구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다. 그것 이상으로 애정도 깊다. 목사님이 직접 오셔서 응원하니 우리가 승리할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서울에서 6명의 손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 간단하게 방문 예배를 드리고 나서 교회 수선할 곳 손을 본 뒤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또 텃밭에서 가져갈 풋고추 가지 오이 등을 채취하고...

하루를 분주하게 보냈다. 몸이 피곤해서 축구 경기 관람은 쉬기로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몸이 먼저지... 오후 6시가 될 즈음 아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당신 저녁 7시 경기라면서 준비 안 해요?"

"응, 보시다시피 피곤해서 오늘은 좀 쉬려고..."

아내에게 듣고 있는 말이 있어서인 것 같다. 누가 들어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아내도 애향심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김천상무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아내에게 듣고 있는 말이란 이런 것이다.

"김천상무 경기가 있을 때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당신 운동장에 가야겠어요. 당신이 가는 날은 족족 김천상무가 승리를 거두니까요. 달포 전인가 경남FC와의 경기는 당신이 안 가니까 패했잖아요. 어서 서두르세요."

피곤함이 싹 달아났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광복절 공휴일 탓으로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송실에선 분위기를 돋우는 아나운스멘트가 계속 흘러나왔다. 내가 왔으니 승리하겠지?

이날 경기는 4대 0으로 끝났다. 김천상무의 완승이었다. 이런 스탠스를 유지하면 2부 리그 우승, 1부 리그로의 승격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스포츠는 지역을 하나 되게 해서 좋다.

막을 내린 극장처럼, 장을 마감한 파시의 분위기처럼 운동장도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관객들은 한 건을 해냈다는 승리감에 싱글벙글이다. 답답한 세상을 관통하는 희망의 화살처럼, 니케(Nike)의 꿈처럼...

정말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내가 20대 건장한 청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장애인이 아닌 씩씩한 청년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멋진 축구화에 흑적 색 줄이 확연한 양말을 신고 있었다. 배번 7을 달고 김천상무의 골 게터로 활약하는... 꿈, 상쾌했다(耳穆).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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