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한심하고 답답해서 성경 창세기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들이겠소. 신이 천지를 창조하던 아주 옛날, 한 지아비와 지어미로 인간을 창조했소, 이름하여 아담과 하와(이브)라고 하지요. 신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이 거처하도록 동산을 만들어 ‘에덴’이라고 했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덴 동산’이지요. 그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 두 남녀를 살게 하고 동산 안의 각종 실과는 임의로 따 먹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소.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명과 함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더 늘여보겠소. 하루는 동산 안의 가장 간교한 뱀이 와서 여자(하와)를 꾀었지요. 그 꾐에 빠져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어요. 하와는 혼자 먹어서 께름칙했던지 남편에게도 그 열매를 먹게 했지요. 과연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고 나무 사이에 숨었다네요. 신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아담의 대답이예요.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 때 신은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구나”라고 다그쳤어요.

아담의 대답이 걸작이예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신은 여자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다그쳤지요.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또 변명했다지요. 그 뱀에게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고 저주했대요. 아담과 하와에게도 신의 저주가 시작되었지요.

성경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왜 끄집어 내는가. 나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전가 현상이 인간역사의 원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자기의 잘못을 아담은 자기 부인 하와에게로 전가하고, 하와는 미물인 뱀에게 돌렸지요. 그 책임을 아담이나 하와가 자기의 책임으로 통감하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면 인류역사가 바뀌어지지 않았을까요. 변명하고 책임전가하는 그 역사가 흐르고 흘러, 교회 장로님을 정당대표로 삼고 있는 ‘국민의힘’에 와서는 걸핏하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비아냥끼를 가지고 글을 쓰기에도 민망스럽군요.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27일 새만금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를 만나서 성공적인 대회 개최 등에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전북도

집권세력은 이번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부실 준비로 낭패를 당하게 되자 이를 문재인 정부와 전라북도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네요. 묻겠다고 하는 내용을 보니, 일일히 거론하지 않겠지만, 참으로 그럴듯해요.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고도 집행위원장을 맡은 전북도지사는 뭘 했느냐는 책임추궁도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대회 공동위원장에는 현 정권의 세분 장관(행안부, 문체부, 여가부)과 한국스카우트연맹총재 및 김윤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군요. 이번에 방통위원회 사태 때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야당 공동위원장의 역할이 있었을까 의심이 돼요.

그렇다면 적어도 이 정권 집권 이후 잼버리 준비는 세분 공동위원장과 국민의당 출신의 전북지사 선에서 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닐까요. 윗선 한마디면 프로그램도 하루아침에 후닥닥 추가 혹은 변경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집권 15개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점잖게 말해서, 의아하군요. 문제가 발견되면 득달같던 이 정권이 하필 이 일에는 손을 놓고 있었을까요. 국민의힘은 앞 정권 조사에 앞서서 15개월 동안 뭘 했는지부터 따져야겠네요. 그래야만 앞 정권의 책임을 묻겠다는 소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요.

‘국민의힘’ 정권이 앞 정권 탓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요. 작년 7월 중순인가요, 윤 정권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지자 그 때도 ‘문재인 정권’ 때문이라고 했지요. 그 때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고 했던가요. 그걸 보고 어느 분은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놀라 달아나게 했다’는 비아냥도 했더군요.

지난 1년 반동안 ‘국민의힘’ 정권이 전 정권 탓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일일히 지적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지요. 적어도 앞 정권을 탓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정당․정권의 모습은 아니지요. 잼버리 대회와 관련, 왜 진작 그런 허점을 발견하여 조치하지 못했는가, 그 책임을 먼저 공동위원장에게 물어야 하지 않나요. 정권 인수위원회는 무얼 했으며. 집권한 지 1년 5개월여가 되는데도, 검경은 이 정권의 장기를 살리지 않고 사태가 왜 이 지경에 이르도록 했나요.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공부못하는 사람의 특징에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글도 있네요. 혹시 ‘국민의힘’이 걸핏하면 앞 정권을 끌어들이는 물귀신작전 쓰는 것이 혹시 집권정당 안에 있는 ‘남탓 카르텔’ 때문이 아닌가 의구심도 없지 않아요. 제 일 열심히 하다보면 주변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해요. 제발 부탁인데, 결과가 드러날 때 앞 정부 탓이라고 말해도 늦지 않으니, 미리 추정해서 이말 저말 하면서 정당․정권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 주세요. 추하게 보여요.

옛날 봉건시대에는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가뭄이나 흉년이 들면 군주 자신이 자기 잘못으로 돌리며 조서를 발표(罪己詔)하는 미덕이 있었어요. 거기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남탓으로 책임전가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으면 해요, 국민교육에도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아시지 않아요.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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