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취래원(醉來苑)에서 - 김천일보 김천iTV

영주 갈 일이 있었다. 같은 경북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거리는 서울보다 더 먼 곳이다. '영주'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황보윤식 선생이다.

황보 선생은 영주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분이다. 아니,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시켜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그런 무게를 지니고 있다.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영주한우플라자란 음식점이었는데, 이곳도 무척 중복을 타고 있었다. 한참 대기를 한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영주의 취래원에서... 2016년 5월 최창우와 함께 그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부터 최창우, 황보윤식 선생, 이명재

식사 초청은 내가 했는데 계산은 황보 선생이 했다. 미안하기 이럴 데 없다. 취래원(醉來苑)까지 발걸음을 띄었다. 취래원은 황보 선생 사저 택호(宅號)다.

사모님이 손수 만든 홍시 샤베트를 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깊고도 넓다. 정담 도중 책 네 권을 선물이라며 가져왔다.

신채호 선생에 관한 책인데 한 권은 아무리 찾아도 눈에 안 띈다고 했다. 책을 주제로 한 대화는 밤을 지새면서 이어가도 모자랄 두 사람이다.

선물로 받은 네 권 중 세 권이 함석헌 선생과 관련되어 있다. 그가 직접 쓴 책들이다. 황보 선생은 현재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

<함석헌과 민본아나키스트, 그들의 역사적 기억>(도서출판 문사철, 2019),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도서출판 문사철, 2017), <씨ᄋᆞᆯ의 소리>7ᆞ8월호(함석헌기념사업회, 2023), <민중의 정치미학>(도서출판 비공, 2022).

황보윤식 지음 <함석헌과 민본 아나키스트, 그들의 역사적 기억>,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월간 <씨ᄋᆞᆯ의 소리 7·8월호>, 황보윤시기 엮음 <민중의 정치미>을 저자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씨ᄋᆞᆯ의 소리>는 암흑같이 어두웠던 시절, 청년들의 마음을 뛰게 만든 월간지다. <민중의 정치미학>에는 나의 이름도 올라가 있는 이른바 공저(共著) 성격의 책이다.

이런 귀하고 의미있는 책을 선물로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읽은 것도 있지만 시간을 내어 찬찬히 다시 독파해야 할 귀한 책들이다. 벌써 설렌다.

오는 9윌쯤 이만열 선생을 초청, 영주에서 북토크 형식의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보수(극우)가 주류인 지역에서 이런 모임을 갖는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취래원(醉來苑), 술 취한 사람이 와서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 사과 향에 취해 부담 없이 노닐 수 있는 곳, 민중에 대한 사랑의 대화에 취할 수 있는 곳…

중의적 뜻을 내포하고 있는 취래원. 산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취해 정담을 나누다가 한 시간여 만에 그곳을 떴다. 사과 과수원의 여름 향기가 싫지 않았다.

외길 그것도 좁은 길이어서 올라갔던 길로 다시 조심조심 내려와야 했다. 황보 선생과 시모님이 웬지 쓸쓸하게 보였다. 그들은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