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바보들의 행진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취미생활을 갖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명품을 싹쓸이하든 아니면 5천 원짜리 물건 구입을 위해 이궁리저궁리하든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쯤 되는 사람은 좀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왕조 봉건시대가 아님에도 대통령 부인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

대통령의 이번 외국 순방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것이라고 하는데, 비나토국으론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은 국가이익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 국민 대다수의 동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얼마나 많은 국민이 '필요하다'에 표를 줄지 모르겠다.

그가 나라를 비운 사이 국내에선 폭우로 인해 많은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가 났다. 급히 귀국을 요하는 중대 사안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나토 정상회의가 끝났음에도 귀국 대신 우크라이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 쇼핑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을 의식해서 예정에도 없던 우크라이나 방문을 결행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나라는 홍수로 난리인데 대통령 부인은 고급 명품을 싹쓸이하고 다녔다고 하니 이게 될 말인가.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대통령이요 그의 부인이다. 국민의 혈세로 진행되는 대통령의 외국 순방은 무엇보다도 국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순방 일정이 국민과 국가에 맞춰져 한 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순방 중 대통령 부인의 명품 쇼핑은 그의 기호에 속하는 것이다. 도리어 국민 대다수 서민에게는 괴리감을 줄 수 있는 처신이다. 그가 구입한 상품의 내용과 가격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Žmonės.lt)가 12일(현지시각) 김건희 여사가 수도 빌뉴스의 현지 옷가게를 방문한 사실을 보도했다. ＜주모네스＞ 누리집 갈무리

세상엔 비밀이 없다. 그의 명품 쇼핑이 우리 국민 몰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더욱이 국민은 폭우 재해로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외국 순방 중 명품 쇼핑을 한다? 국민이 ‘대통령 놀이’를 즐긴다며 화내는 이유다.

이런 일이 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 한참 뒤 대통령실이 해명을 내놓았다. 지나가던 소가 크게 웃을 해명이다. 국민을 바보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해명이 나올 수 없다.

"김 여사가 방문한 것은 맞지만, 가게 직원의 호객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물건을 사지 않았다."

'바이든-날리면'급 해명이다. 설령 호객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치자. 16명의 경호원을 거느린 대통령 부인이 호객 행위에 넘어가서 명품 쇼핑을 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대통령실의 해명 치고 창피할 정도로 유치하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김건희가 명품 쇼핑을 하는 동안 대통령실 소속 경호원들이 다른 손님의 출입을 통제한 가운데 5개 매장에 가서 상품을 샀다고 한다. 이튿날 경호원들을 보내 사지 못한 물건을 마저 구매했고...

1970년대 유신시대를 풍자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 포스터. 검열에 걸려 많은 장면이 삭제된 채로 방영되었다.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모자라면 대통령실 참모들이 바로 잡아 주려고 해야 하는데, 도리어 한술 더 뜨는 짓을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뭐라 그럴까. 성경도 이런 것을 두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했다.

1970년대 영화 중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게 있다. 최인호 원작 소설을 하길종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것이다. 서슬퍼런 유신 통치기에 바보가 되어야 살 수 있다는 자기 비하의 상황극이다.

지금 역으로 국민은 대통령 부부와 그의 참모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그들은 국민을 바보로 알고 행동하지만, 국민은 대통령 부부와 참모들의 모습을 '바보들의 행진' 보듯 쳐다보고 있다.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