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그 단상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독립유공자 평가와 관련해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점

먼저 국가보훈처의 ‘부(部)’ 승격을 축하한다. ‘부’ 승격 때, 약간 봉건적인 냄새가 나서 주저되긴 했다. ‘충훈부(忠勳部)’ 정도의 명칭이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부’ 승격에 즈음하여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에 관한 새로운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지난 3월 초, “6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 ‘길’ 대폭 연다”고 하면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국가보훈부 장관은 SNS를 통해 독립유공자 평가와 관련된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날 독립유공자공적심사에 관여한 바 있기에, 아직 정리가 덜 됐고 살펴야 할 부분이 더 있지만, 우선 아래 졸견(拙見)을 공론에 붙여 질정(叱正)을 구하고자 한다.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는 독립한 한국이 일제강점 하에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진들을 포상하기에 앞서 그 활동을 심사하는 절차다. 이와 관련, 우선 독립운동의 시기를 언제부터로 할 것인가를 문제로 제기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1894년 일본 군대가 경복궁을 침입한 것을 계기로 항일의병이 일어났는데, 그 무렵의 항일운동부터로 잡고 있는 듯하다.

독립운동의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는 일제 침략세력에 대항한 반외세자주운동으로 의병항쟁과 항일 독립운동의 선구로 인식되며 비슷한 시기(1895∼1896년)에 활동한 의병 참여자에게는 훈장 수여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의병활동보다 더 활발하게 일제에 대항하고 희생도 더 컸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 제 2차 척왜(斥倭)운동의 지도자 전봉준과 최시형은 아직 서훈하지 않았다.

때문에 1894년 9월에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와 참여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과제로 남아 있다. 동학농민혁명 제 1차 봉기가 반봉건적 성격을 갖고 있고, 2차 봉기는 일본군과 싸우기 위한 항일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공론이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위원회가 권고한 ‘독립유공자 범위 확대와 심사 개선’ 안은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개인이 독립운동에 관여한 시점을 어느 시기로 보느냐 하는 문제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최종적 평가 시점은 개인의 사망시기나, 1945년 8월 15일 현재로 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 독립운동이나 친일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독립유공자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의 평가 시점... 1945년 8월 15일 그리고 사망 시기

독립운동 평가의 최종적인 시점은 1945년 8월 15일까지 생존했던 분은 그 때로, 그 이전에 돌아간 분은 돌아간 시기로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전에 독립운동을 했어도 그 시점에 친일을 했다면 그 사람은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전에 친일을 했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시점에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는 독립유공자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원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의 문제는 독립유공자를 가리는 중요한 원칙이다.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절개를 굽혔다. 3.1독립선언 작성자도 그랬고, 33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며, 임시정부 수립에 앞장 선 이들 중에도 있었다. 최남선과 최린 정춘수 박희도가 그랬고 이광수가 그랬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분이 김가진이다. 구한국의 개화관리로서 강점초기에는 일제로부터 작위까지 받았으나 3.1운동 직후 대동단을 결성하고 임정이 있는 상해로 망명길에 올라 임정 및 북로군정서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1922년 그가 돌아갔을 때 임정이 그의 귀천(歸天) 길을 도왔다.

독립운동 및 친일행위와 관련, ‘평가시점’(사망시점이나, 1945년 8월 15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평가시점’에 독립운동 혹은 친일, 어느 편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때문에 독립운동과 친일행위를 정량화(定量化)하여 비교우위로 독립운동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고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갖는다.

가치관이 다른 독립운동과 친일, 정량화하는 것 불가능

거듭 말하지만, 독립운동과 친일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도출하기 위해 정량화하는 것 차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1운동 관련 인사들의 독립운동과 친일운동을 정량화하여 비교우위로 친일여부를 검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쉽지 않고 무의미하다. 가치관이 다른 ‘독립운동’과 ‘친일’을 비교우위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독립운동이냐 친일행위냐로 규정하는 것은 비교우위적으로 결론내릴 것이 아니라 ‘평가시점’에 그가 처했던 입지로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평가시점’의 독립운동 여부가 독립운동 공적심사의 대상이요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적심사에서 이 비교우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을 본다.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는 남북분단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은 해방 전에 이뤄졌는데, 해방 후의 분단상황은 독립운동 공적 평가를 편가르게 했다. 행적은 고사하고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다. 분단국가가 갖는 비애라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제 이 문제를 되짚어볼 때가 되었다.

이념적 잣대로 독립운동을 가리면 민족사 전체를 포용하지 못함

어떠한 독립운동가도 북한 정권에 관여했다면 서훈은 물론 심사에서도 배제되었다. 해방 이전에 사망한 독립운동가라도 북한 정권의 인물과 인맥이 닿았다면 그 서훈을 보류하거나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은 오랜 동안 평가에서 제외되었거나 저평가되었다. 독립운동 서훈에서 이렇게 이념적, 정치적 잣대를 갖다 대다 보니 독립운동의 가치가 민족사 전체를 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들의 입에 회자되는 김원봉을 비롯하여 홍명희 이극로와 화북․만주에서 독립운동한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배제의 논리 때문에 독립운동의 폭은 그만큼 좁아졌고 이는 남북대결에서 정통성의 약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국권이 없는 시기의 정통성은 독립운동 세력과 관련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년 전에는 해방 전에 돌아간 독립운동가들마저 김일성의 친인척이라고 하여 서훈을 취소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김형권(-1934)과 강진석(-1942)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독립운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앞서 말한 ‘평가시점’에서 그가 독립운동 혹은 친일 어느 쪽에 있었는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그 뒤에 그가 어떤 이념을 가졌고 어떤 정치적 활동을 했느냐는 것은 독립유공자 평가와는 관계시키지 않아야 한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이념이 아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친일로 평가해야

해방 이후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행적이 어떠하더라도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그가 이룩한 독립운동 혹은 친일행위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독립운동 행적은, 그 뒤의 그의 행적이나 정치 사상적 지향과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그의 해방 후의 이념과 행동이 그의 독립운동의 업적을 훼손시켜서도 안되고, 해방 뒤의 활동이 그의 친일행적을 가리는 방편이 되어서도 안된다.

개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가 ‘평가시점’(해방) 이후의 입지나 정치사상적 지향과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해방 뒤의 행적이 독립유공자 평가에 관련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사회주의계 독립운동의 경우, 공적을 삭감하여 독립운동 표창의 훈위(勳位)를 낮추었다.

그런데다 최근 잘못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남긴 훈공이 일제시의 독립운동 혹은 친일행위 평가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 같은 전언을 들었다. 와전이기를 바란다. 농림장관으로 토지개혁을 주도했다 하여 그 공적을 굳이 독립운동과 관련시켜 평가한다거나(그는 해방 후의 공적이 아니더라도 독립운동 경력자체가 큰 분이다), 한국전쟁 때에 큰 공을 세웠다 하여 그의 일제시의 행적을 순화시켜 평가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같다.

독립운동의 공적 평가, 진영 논리를 초월한 숭고한 가치와 활동으로

토지개혁 공로나 한국 전쟁 때의 공로는 굳이 독립운동 서훈의 틀에서 평가받을 것이 아니라 다른 틀의 유공자 서훈에서 행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계획들이 실제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독립유공자 서훈의 틀에 관련시킨다는 것은 온당할까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자칫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까 우려된다.

독립운동 공적 평가는 해방 후의 상황과 무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대뜸 “북한 공산주의자들이나 대한민국을 반대한 이들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자는 의도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 하에서, 나라를 찾고자 하는 독립운동은 이념이나 사상이 갖는 진영논리를 초월한 숭고한 가치요 행동이었다. 때문에 국가보훈위원회가 ‘평가시점’ 이후에 그가 남긴 행적과 무관하게 독립운동 여부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처한 오늘의 정치적 한계가 있음에도,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독립운동 유산을 정치 체제나 이념으로부터 분리,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그런 의도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여러 제약들에서 분리해 독립운동의 숭고한 가치를 이념이나 체제의 잣대없이 그대로 평가하자는 그런 이상을 실현하지 못해서 고민이다.

대한민국건국훈장의 틀 확대... 독립운동훈장 혹은 독립훈장으로

여기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해방 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 분들에 대한 독립유공자 표창을 <대한민국 ‘건국훈장’의 틀>에서 시행한다는 것이 문제가 없겠으며 또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서훈은 <대한민국 건국훈장의 틀>에서만 이뤄질 것이 아니라,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서훈하는 ‘독립운동 훈장’ 혹은 ‘독립훈장’이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거기에서 포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독립(운동)훈장’의 틀이 가능하다면, 거기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의 틀에 넣기에는 불편한, 이를 거부하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틀을 만들어서라도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을, 이념과 사상, 정치적 지향에 관계없이 포괄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의 건강성과 유연성을 담보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정통성을 확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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