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감정이 칼춤추듯 하는 정권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감정이 칼춤 추듯 한다' 이런 속담이 있는지 모르겠다.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 쓰야겠다. 지금 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조폭에서나 있을 법한 감정풀이가 현 정권 사람들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급기야 그중 비교적 이성파에 속한다고 알려진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이 대열에 멋떨어지게 합류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을 갑자기 양평군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일가 소유의 땅 인근으로 종점을 옮겨 막대한 지가 상승 이익을 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이 야당 등에서 제기되자 원 장관은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딱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종점을 원위치시키면 될 일을 취소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건설은 수도권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이것을 어렵게 성사시키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양평군민들의 뒷통수를 치는 이런 일을 생각해냈다는 자체가 괴이할 뿐이다.

여기에 국힘당 정책위의장이라는 자는 원희룡의 감정적 대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종점 변경의 부당성을 지적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며 뜬금없이 민주당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원희룡은 거기에 김건희 일가 땅이 있는 줄 몰랐다며 장관직뿐 아니라 정치생명까지 걸겠다고 했다. 지난 국감 때 한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이 문제의 의혹을 질문받은 바 있다.

확인해 보겠다고 했으니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변명에 능한 이들은 자주, 듣긴 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 망각을 약방의 감초처럼 탈출구로 애용한다. 원희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을 걸겠다고 했으니 국토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조용히 야인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된 마당에 더이상 다른 변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며, 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알고 모르고의 진실 게임이 아니라 국민이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가질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정권 들어서고 진실 게임으로 낭비한 국력이 그 얼마인가. 윤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진실 게임에 대해 법원조차도 어느 쪽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어느 쪽 말이 맞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이런 분란을 유발해서 국론을 찢어지게 한 잘못이 결코 적지 않다. '바이든-날리면'을 처음 보도한 MBC의 고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권의 감정적 대처가 도를 더해가고 있다. 공공기관의 대표를 비윤석열 사람들이라고 해서 갖은 방법 다 동원해 쫓아낸다. 거기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는 것도 감정풀이 방식이다. 소화(笑話)이다.

민주당 추천 최민희 방통위원 후보는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재가하지 않고 뭉개고 있다. 군사 독재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감정적 대처가 반복될 때 그만큼 후환도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독재의 그림자가 빈말이 아닌 것은 어떤 사람을 요직에 앉히느냐를 보면 확인된다. 현 정권 출범 때 많은 국민과 야당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은 검찰 독재를 향한 상징적 사건이다.

지금 검사 출신 인사들이 모든 부문에서 실권을 쥐고 위세를 부린다. 지방의 독립기념관 관장조차 검찰 출신을 내려보낼 정도다. 군사정권 때 육사가 판을 쳤듯이 검찰공화국에서 검사 관련 인사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독재의 안전핀은 언론장악과 정권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원천 봉쇄하는 일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관을 방통위원장에 또 유인촌을 대통령 문화특보로 임명했다. 두 자리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동관(왼쪽), 대통령 문화특보로 임명된 유인촌

이동관 유인촌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 두 사람은 이미 MB 정부 때 정권 강화에 실력(?)을 발휘했던 이들이다. 언론계와 문화 예술계에 또 어떤 칼바람이 휘몰아칠지 모른다. 민주주의와는 소원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민이 아닌 정권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하는 데 단련된 사람들이다. 이동관의 종편, 유인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윤 정권 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자체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흘러간 물을 끌어올 이유가 있는가.

막가파 정권, '배째라 식' 사람들과는 협치는 커녕 대화 자체가 불가하다. 여기에 매사 조폭의 생리와 같이 유아기 수준의 감정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에게는 약이 없다. 있다면 선거 때 표로 심판하는 것인데 그 일도 그렇게 쉬울 것 같지 않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