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6.25 후 DDT가 나온 후에는 ‘빈대’라는 미물 자체가 사라지다시피 해서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빨간 색깔의 이 생물은 냄새가 독특해서인지 ‘냄새 풍기는 이(蝨)’, 취슬(臭蝨)이라고도 했다.

빈대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호롱불을 켜 놓고 벽 틈새로 종횡하는 빈대를 잡으려 한 적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이(蝨)와 빈대(臭蝨)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친, 지금 생각하면, ‘낭만적’이랄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다.

‘빈대를 잡으려다 집을 태워버린다’는 속담은 이런 경험 없이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빈대라는 미물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게 되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런데 이 말이 사회화되면서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말이 되었다.

‘손해를 크게 볼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마땅치 아니한 것을 없애려고 그저 덤비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빈대 운운’ 한 이 말은 사회적인 의미로 옷을 갈아입었다. 미물인 빈대가 이렇게 사회적 경종의 한 상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면 그 미물은 사라지면서 인간에게 ‘살신성인’의 교훈을 남겼다고 할 것인가.

같은 내용의 뜻이 될지 모르지만, 함께 생각나는 말이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다. 말 그대로는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였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작은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 자체를 그르친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또 이런 말과는 약간 결을 달리하지만, 공자(孔子)가 제자 자공(子貢)에게 했다(『論語』 제 11편 ‘先進’ 15장)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생각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주자(朱子)는 이 말을 “도(道)는 중용(中庸)으로 지극함을 삼으니 현자(賢者)와 지자(知者)의 지나침은 어리석은 자와 불초(不肖)한 자의 미치지 못함보다 나을 것 같으나 그 중도(中道)를 잃음은 똑같은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왜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최근 빙송통신위원회가 KBS의 수신료 징수와 관련,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대통령실의 조사를 근거로 시청료 분리징수를 위한 조치를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단행하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KBS 수신료 문제와 관련, 공영방송이 취해야 할 공정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2007년 말이다. 그 때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언론 관련 NGO들도 KBS의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피켓팅을 하면서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KBS는 화면에 그런 내용을 자주 비쳤다.

KBS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필자는 KBS가 공영방송이라면 자기들이 원하는 수신료인상을 부추기는 NGO들의 주장만 화면에 비칠 것이 아니라, 그때 일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고액연봉을 포함한 KBS의 방만 경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느냐고 질타했다(경향신문 2007. 10.17 칼럼).

공영방송이라면 수신료 인상을 성원하는 NGO들의 목소리 못지않게, 방만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고루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KBS 시청료 문제가 그 뒤 어떻게 결말지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그 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KBS가 시행하는 해외동포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KBS 운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전에 시작된 KBS의 해외동포상 시상식에 필자가 참석, 수상하는 선배를 축하한 적이 있었다. 그 뒤 이 상은 몇 개 분야로 나뉘어졌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시상 때는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선정된 분야도 있었지만, 이 상은 해외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한층 의미 있게 갖도록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KBS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도 더 넓힐 수 있었다. ‘아침 마당’은 물론이고 보건 의료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토론기획, 해외 탐방 같은 것은 자주 대하게 되었다.

지구의 환경문제나 인류의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막대한 경비를 들여 만든 프로그램들은 공영방송이 아니고서는 기획 자체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뉴스도 1980년대 가졌던 ‘땡전 뉴스’류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비판적인 시청자로서 다가가는 내게 KBS는 그만큼 답해 주었고 시청하는 만큼 내 시야를 넓혀 주었다. 어떤 때는 필자가 꼬박꼬박 내는 몇 푼 안 되는 시청료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답받는구나 하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대통령실에서 출범 초기의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KBS 시청료 징수 문제를 의제로 설정, 여론 조사의 형식을 빌린 것은 예사롭지 않다. 설마 처음부터 그 목을 죄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그 의제 설정의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고 또 알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그 의도는 찬반 간에 국민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고, 정부의 의도대로 된다 하더라도, ‘초가삼간 태운다’, ‘교각살우’라는 평가를 쉽게 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방통위 전체회의[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기료와 함께 징수하는 방법은 경우의 수를 따진다면 이런 저런 모순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지 벌써 수십년이 되어 국민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보았는데, ‘국민 대부분이 분리징수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 안착된 제도에 메스를 가하려고 하는 것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국이 왜 이런 시청료징수방식에 문제를 갖게 되었는지, 그래서 ‘국민에게 질문해 봐야겠구나’고 발상하게 되었는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게 필자만의 생각일까. 분리 징수하게 되면 그 징수비용이 지금보다 수십 배 더 들게 되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랬을 때 KBS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이며 그것이 한국 언론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방통위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서도 이런 조치를 강행한다면 수신료 징수 방식을 변경함으로써 얻게 될, 국민편익 이상의 또 다른 의도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KBS의 목줄을 죔으로써 언론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도 이제는 영국의 BBC같은 방송을 가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 적이 있는데. 이번 사태를 맞으면서 그런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취임 이래 그렇게도 외쳐왔던 그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KBS에 대한 이런 조치가 바람직한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빈대.....’와 ‘교각살우’와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다시 되새겨보는 아침이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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