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정오로 약속을 잡았다. 어렵게 얻은 옥동자를 볼 겸 축하해주러 가는 기분이었다. 산모는 건강할까, 또 갓 태어난 아기는? 잉태 후 열 달만에 출산하는 애기보다 더 긴 산고(産苦)를 겪었다. 이 책은 2년만에 출간을 하게 되었으니까.

<지례지(知禮誌)>를 받아 들고 가진 첫 느낌은 면지(面誌)치고는 대단히 무겁다는 것이었다. 부피가 크다는 것은 내용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내용의 풍부는 곧 보고 읽을거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자그만치 1,100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6월 12일(월) 지례면 행정복지센터 앞 예지원에서 <지례지> 문재원 편집위원장을 만나 책 출판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읍면에 관한 기록물엔 ‘읍·면사(邑面史)’ 내지 ‘읍·면지(邑面誌)’란 명칭을 붙이는데 ‘지례지’에는 '면(面)' 자가 빠져 있다. 이유가 뭘까. 지금은 행정구역상 지례면으로 한정되어 있는 상태지만 과거에는 지세가 꽤 넓었다.

오랜 세월 지례현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부항, 구성, 대덕 등이 지례현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례를 말할 때 이런 지역을 제외하면 지례를 온전히 설명하지 않은 게 된다. 그래서 ‘지례면지’가 아닌 ‘지례지’로 책명을 정했다.

지례면 행정복지센터 앞 예지원에 편찬추진위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문창곤 편찬추진위원장, 문재원 편집위원장, 문홍연 편찬추진위 총무 등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문홍연 총무를 제외하곤 모두 초면인데 초면이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친밀감이 느껴졌다.

<지례지>는 출판추진위원회를 조직 역할을 나눠 맡고 2년여의 활동 기간을 거쳐 지난 6월 5일 출판기념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민족’ 대신 ‘사람’을 넣어도 뜻은 대동소이하다. 김천은 역시 역사를 아는, 알고자 하는 지역이다. 김천시 읍·면·동 중에서 지례지가 첫 번째 면지(面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미 선행 업적들이 여럿 있었다. 아포읍지를 비롯해 구성면지, 남면지, 감문면지 등이 발간되었다는데, 아무래도 양과 내용면에서 다소 소략한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지례지’는 다른 단체사(기초자치단체 및 광역단체)에 비해서도 손색없이 알차다.

‘지례지’를 출간하는 데 텍스트로 삼은 책이 1884년 문필석(文弼錫) 지음 판각본 <知禮縣邑誌>(지례현읍지)이다. 여기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내용과 형식을 문재원 편찬위원장의 박학다식이 살과 핏줄로 덧입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례지>는 문재원 편집위원장을 비롯한 추진위원들과 면민들의 지역 사랑의 결실이다. 문 위원장은 받은 사랑을 갚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그것들에 바탕 하지 않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지례지’ 발간 목적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로 대체할 수 있겠다.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비단 김천시 지례면의 현상만이 아닐 터이다. 더 이상 방치하다간 지례의 아름다운 문화와 인물이 전설 속의 한 장면으로 화할지도 모른다.

전통은 계승하고 인습은 청산하며 역사를 메꿔나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집을 정리하면서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든 물건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보내는 심리와 다를 바 없다. 옥석을 가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본 신문 이명재 발행인은 <지례지> 편찬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이끌어냈다.

2021년 7월 문창곤 위원장을 중심으로 지례지편찬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문재원 위원장을 중심으로 편집위원회를 따로 두었다. 그러니까 편찬추진위는 일의 원만한 추진을 위하여 재정 등 제반 업무를 맡고, 편집위는 집필을 책임지는 식이었다.

문재원 편집위원장에게 집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지,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는지 슬쩍 찔러보았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문 위원장은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이곳에서 초ㆍ중ㆍ고를 다녔다. 지역의 사랑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인생 역정이었음을 고백했다.

지역에서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 ‘지례지’ 발간이라고 생각하고 기쁨으로 감당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어려웠던 것은 추진위원이자 김천향토사연구회장으로 애향심이 남달랐던 이석호 위원의 갑작스런 타계였다. 할반지통(割半之痛)의 심정이었다.

<지례지> 출판기념회에서 문창곤 추진위원장과 문재원 편집위원장 등이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문 위원장의 죽마고우이기도 한 이석호 위원은 몸이 불편한 문 위원장을 엎고 김천 문화의 흔적을 찾아 다닌 사람이다. ‘지례지’ 편집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친구가 코로나19의 엄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간 것이다.

문재원 위원장은 향토사학자로서 중앙에까지 문명(文名)이 알려질 만큼 유명 인사이다. 그의 깊이 있는 한학(漢學)과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것이 학문 도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명성에 걸맞게 그는 지역과 관계되는 책 집필에 열과 성을 쏟았다.

그가 집필한 책만 해도 ‘금릉군지’, ‘김천시사’ 등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정도이다. ‘전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취지문’도 문 위원장 작품인데, 이것은 전국 16개 지방 및 고등검찰청에 게시될 정도로 명문장이다. 영어로 번역되어 외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지례지> 서술의 텍스트가 된 문필석 저 판각본 <지례현읍지>. 1884년에 저술된 것이다.

2년여의 활동을 마감하고 지례지편찬추진위원회도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위원장을 비롯해 추진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지례를 넘어 김천을 움직일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즉 지역 유지들이다. 추진위원회는 해체되는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문창곤 위원장은 그것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지역민과 출향인 또 관계기관의 협조로 예산도 기대 이상으로 확보되어 책을 출간하고도 얼마가 남았다. 2년여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추진위의 인력도 지례를 위해 보배와도 같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해체하지 말고 지역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단체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장지도 윤은보 서즐의 충효를 기리는 장학사업 등도 구상의 내용 안에 들어 있다. 만들기는 어려워도 없애기는 쉬운 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6월 5일 출판기념회에서 문재원 편집위원장이 출판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문재원 위원장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떠오른 게 있다. 18 세기 프랑스의 백과전서파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철학자 디드로(Denis Diderot)를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 그룹으로 여러 분야에서 박학다식을 자랑했다.

국학에 대해 두루 꿰뚫고 있는 문재원 편집위원장을 백과전서파 지식인과 연결짓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굳이 서구에서 찾을 것 없이 조선 후기 실학파 학자들도 백과전서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문창곤 추진위원장이 말했듯이 문재원 위원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지례지’였다.

산 하나 정복한 듯한 뿌듯함에 젖어 있을 법하다. 혹시 아쉬운 점이 없는가고 물었다. 지례의 독특한 생활 문화에 관한 글을 올리지 못한 것을 들었다. 원고 분량이 많아 지례지 전체에 부담을 끼칠 것 같아 뺐다. 이건 언젠가 별책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출판기념회를 찾아 <지례지> 출판을 축하했다.

지역을 다루는 지(誌) 또는 사(史) 성격의 글을 역사에서는 미시사(微視史)의 범주에 넣는다. 미시사에서는 지역의 역사적 인물들을 많이 다루게 된다. 간혹 자기 조상 이름이 뒤에 서술되어 있느냐며 항의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미련한 사람들이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가문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역사적 위치는 순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느냐로 판가름 난다. 자기 조상 ‘선순위’ 운운하는 이들은 지역발전에 해 될 때가 많다.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인간의 생활 양태도 또 의식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생공영(共生共榮)은 아직도 살아 있는 진리의 개념이다. "네 손은 내가 잡고, 내 손은 네가 잡고" 문 위원장이 좋아하는 모토라고 한다.

대담을 마치고 문재원 편집위원장, 문홍연 추진위 총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말이다. ‘지례지’ 면면에 배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문 위원장이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사에 보편적으로 해당될 때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여긴다. 휠체어를 타고 나와 전송하는 그에게서 따뜻함이 피어올랐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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