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놀라게 한 마삭줄

22년 전 여름,
대학생이던 딸이 치매를 앓고 있던 
할머니와 함께 며칠 지낼 테니 엄마 아빠는 잠시  
바람을 쐬고 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강원도로 여행을 하면서 
평창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에 들러 구경을 한 후,
작은 마삭줄 화분을 하나 구해 왔습니다.

아파트에서 몇 년을 키웠지만 꽃이 안 피었습니다.
2007년 시골에 들어와 맨땅에 옮겨 심어도
여전히 꽃이 안 피었습니다.

장마에 언덕이 크게 무너졌습니다. 
거기에 마삭줄을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마삭줄은 마디마디 뿌리를 내리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몇 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언덕 비탈이 온통 마삭줄로 뒤덮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추위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가 보다 하고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마삭줄 가운데 
인동덩굴이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캐내려다가 마삭줄 대신에 꽃이나 피우라고 
본체만체 그냥 두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마삭줄이 가까이에서 자라던
홍괴불나무를 타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걷어내기도 힘들겠지만 
덩굴식물인 마삭줄이 다른 나무를 타고 높이 오르면 
혹시 꽃이 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괴불나무에겐 무척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마삭줄 가운에 
사위질빵이 섞여 자라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하나씩 하나씩 힘들게 캐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마삭줄에 꽃이 핀 걸 발견했습니다.
다른 곳도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꽃대가 달렸습니다.
무려 22년 만에 바보 마삭줄이 꽃을 피운 겁니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내년엔 언덕을 덮은 마삭줄에 온통 주렁주렁 
마삭줄 꽃이 달릴 거라 생각하니 흥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20년 만에 마삭줄에 꽃이 피는 게 어쩌면 
기후변화의 영향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협죽도과’의 마삭줄은 
난온대성 늘푸른 덩굴식물로 
한반도 남부 해안의 바위지대,  
또는 숲 가장자리의 반음지에 흔하게 자랍니다.
줄기에서 공기뿌리가 내려 주변의 바위나 나무 등 
다른 물체에 붙어 자랍니다.
 
‘마삭줄’이란 이름은 
삼으로 꼰 밧줄을 뜻하는 ‘마삭(麻索)’과
‘줄’의 합성어로, 덩굴성 줄기를 이용해서
줄을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5~6월에 흰색으로 피는 꽃은 꽃부리가 
5갈래로 깊게 갈라져 바람개비 모양으로 말리는데
향기가 무척 좋습니다.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고 
표면에는 윤기가 흐르는 가죽질입니다. 
겨울에는 잎이 붉게 물들기도 하여 관상 가치가 높습니다.

열매는 길이 10cm 이상으로 길쭉하게 달리며,
열매속의 씨앗은 박주가리처럼  
익으면 씨앗에 솜털 같은 날개가 달려 날아갑니다.
마삭줄과 구분하기 힘든 ‘백화등’도 있는데 
백화등은 꽃과 잎이 마삭줄보다 크고 둥근 게 다릅니다. 

정윤영  gcilbonews@daum.net

정윤영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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