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세상 많이 바뀌었다. 국제 관계도 자국 이익 중심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영원한 동지도 또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게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기 냉전 구도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현 정권의 사람들이다. 미국과 중국을 양 축으로 한 친미 반중 외교가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 국가이다. 실제로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대중 수출 양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고스란히 경제적 손실로 돌아온다.

중앙집권의 힘이 강한 사회죽의 국가 중국이다. 당에서 결정하면 바로 시행된다. 민주주의 논의 절차를 거치고 인민의 총의를 모을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매개고리 역할을 하는 주한 중국대사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일 수밖에 없다. 주중 한국대사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지난 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찬의 자리를 가졌다. 여기서 한국의 현 정권에 대해 불만의 쏟아놓았다고 한다.

현 정권에서 발끈했다. 내정 간섭 운운하며 중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엄중 경고했다고 한다. 내정 간섭을 당했을 때 외교부가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필요하다.

주권 국가로써 의당 취해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감정적 대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 이런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자칫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라마다 외교를 담당하는 부처는 심사숙고하며 일을 처리한다.

현 정권의 대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중국에는 강경, 미국과 일본에는 굴종에 가까운 대응을 하는 것은 주권 국가로서 원칙이 될 수 없다. 기준도 아니다.

미국은 잘못을 범해도 우방이니까 괜찮고, 중국은 대사의 불만 섞인 말을 근거 삼아 주권 침해니 내정 간섭이니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미국이 용산 대통령실을 도청했다고 해서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다. 주권 국가로써 모욕적 사건이었음에도 현 정권은 미국을 두둔하기에 바빴다.

악의가 없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굴종의 대응은 당사국인 미국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도청(盜聽)을 파렴치한 행동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에 있었다. 도청은 도둑질해서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문제를 유야무야(有耶無耶) 넘긴 정권이 중국에 그토록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원인이 꼬여 있을 것이다. 우선 두 가지만 들겠다.

첫째는 근미원중(近美遠中), 즉 미국은 가까이하고 중국은 멀리한다는 현 정권의 외교 기저(基底)가 있다. 대중 수출 침체로 경제적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미국을 붙들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주한 중국 대사가 제1 야당 대표와 첫 번째 만찬 회동을 잡은 것을 언짢게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한 것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정부 여당의 감정적 대처는 현실로 나타났다. 전언에 의하면 김기현 당 대표와 정권 실세 한동훈 법무장관이 주한 중국대사의 초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유아기적 발상이다.

그러면서 국힘당 사람들이 이재명 대표를 사대주의 운운하며 공격했다는데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중국과 대화하는 것은 사대주의이고 미국과 일본에 굴종하는 것은 과연 주권 국가의 떳떳한 행동인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만찬 초대를 거부한 국힘당 김기현 대표(왼쪽)와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대(事大)라는 말은 봉건 왕조 시대 때 생긴 말이다. 큰 나라, 힘 있는 나라를 섬긴다는 뜻이다. 그때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단어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 제일 대국은 미국이다. 미국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려는 것은 맹방으로서의 처신이고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사대인지 묻고 싶다.

다시 냉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마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대치가 현실이 되고 있다. '다시 냉전 구도'는 강대국 주도권 다툼에 유리한 구도이다.

이런 구도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하기에 유리하고. 맹주 국가가 되기 위한 환경 조성에 득이 된다. 여기에 우리가 들러리 설 이유가 있을까.

역사의 후퇴를 이야기한다. 이 말은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냉전의 도래로 대외적으로는 강대국 중심의 세계 체제로 재편된다.

대내적으로는 강압적 언론 통제로 비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 시계바늘을 몇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역사의 후퇴 아니고 뭔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어둠이 지배하기 쉽다. 불신이 팽배해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염치까지 잃으면 그야말로 절망이다. 정권의 책임이 크다.

국민을 비상식적으로 대하고, 뻔뻔스러움으로 국정을 운영할 때 그 귀착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래저래 걱정이 태산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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