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잘 나고 많이 가진 사람을 특별히 배척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한 일입니다. 저희 교회는 세상적으로 불 때 부족한 사람들만 모여 듭니다. 잘 난 척하는 사람들은 왔다가 그냥 갑니다. 한두 번, 길어야 세 번 정도 출석하다가 어디론지 가고 맙니다. 대부분 큰 교회로 갔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평등은 어느 한 부문이 아닌 전체에 적용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평등을 예수님은 사랑의 정도로 표현했습니다. 강자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고 베푸셨습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구절이어서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일 거예요. 이 세상의 삶에서 부자와 나사로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생활과 거지 생활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죽어 부자는 음부(陰府)로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음부에서 물 한 모금을 원하는 부자에게 주님은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평등의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다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난을 받느니라"(눅 16:25). 천국까지 이어지는 평등의 원칙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지역적으로 소외가 극심한 농촌 지역입니다.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나오는 성도들도 대부분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노인들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특별히 노년부라는 기관을 두고 있습니다. 비교적 크다는 교회에도 없는 부서입니다.

또 학생회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그 아이들을 최대한 인정해 주려고 애씁니다.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늘 주지시킵니다. 그들이 저희 작은 농촌 교회를 찾는 이유입니다.

또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저 자신 장애를 갖고 있는 목회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교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장애인들이 저희 교회에 와서 발을 붙입니다.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저는 최대한 힘을 기울입니다.

높은 곳만 바라보는 사람이 저희 교회에 오면 무척 어색해합니다. 경쟁에서 이겨 일등을 꿈꾸는 사람은 그래서 저희 교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는가 봅니다. 우리는 승자(勝者) 독식주의(獨食主義)를 배격하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공동체를 소망하고 있거든요.

어제는 주일이었습니다. 비교적 지역에서 큰 교회에 속하는 곳의 여전도회에서 저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같이 예배도 드리고 준비해온 음식물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손님들이 중요한 것을 정성껏 마련해 왔더군요. 즐겁고 은혜로운 시간을 기도로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 뒤엔 치우는 일에 손들을 모아야 합니다. 이 때 자칫 잘못하다가는 성도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일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땐 마찰의 빈도가 더 많게 됩니다.

할머니들을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니 대성통곡(大聲痛哭)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 들어라고 더 크게 우는 것 같습니다. 부곡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K(52세) 성도입니다. 한참 나이 어린 사람에게 일 안 한다고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음식 챙기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다 가방에 챙겨 넣었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방을 열어 속을 제게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교회를 안 나오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이 겁을 낸다는 것을 알고 가끔 써먹는 그 나름의 무기입니다. 그를 겨우 달래 놓았습니다. 이제 더 큰 소리로 나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며, 해도 너무 하는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K 성도를 일러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J 권찰입니다. 목사님이 저 사람 좀 타일러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 초 황희(黃喜) 정승이 생각났습니다. 다투고 오는 두 사람에게 너도 옳다, 또 다른 너도 옳다며 다독거려주었다는….

이들은 둘 다 약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단순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보다는 더 큰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둘 다 매우 순진해서 타산할 줄 모릅니다. 할 때는 정말 몸과 마음과 온갖 정성과 뜻을 다 해 충성을 바칩니다. 저는 이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들어 강하게 만들어 쓰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믿게 됩니다.

어제 이 두 사람을 간신히 화해시키고 각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해를 시켰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의 감정에는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이어나간다면 또 언제 관계가 깨질지 모릅니다. 순간 두 사람을 다음 날 다시 불러 형식과 내용이 갖춰진 화해를 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교회로 오게 할 수 있는 무슨 일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 행사에 쓰고 많은 밥이 남았습니다. 이럴 경우 전에는 저희 식구들이 두고두고 먹어 치워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발동한 생각이 이 남은 밥으로 감주(식혜)를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K와 J 두 성도를 불러 같이 하자고 하면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K 성도는 다른 것은 못 해도 감주만은 확실히 만들 수 있다고 평소 자랑하곤 했거든요.

아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사정을 알리고 교회에 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쾌히 승낙했습니다. 감주에 필수인 엿질금까지 사 오겠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J 권찰 차례입니다. 그도 단술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며 바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일이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아내를 비롯해서 세 여성은 언제 다투었냐는 듯 의기투합(意氣投合)해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단술을 만들어 이젠 삭혀야 한다며 전기밥솥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서둘러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K와 J 성도가 서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두 사람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반찬을 권하며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에 일조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때 아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두 분이 어제 행사 뒤에 일을 두고 언성을 높인 것 같은데, 정식으로 사과를 주고받으면 좋겠어요. J 권찰이 나이가 적으니까 먼저 사과하면 어떨까요."

아내의 주선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과를 주고받으려면 '사과(apple)'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농담을 하려다가 참았습니다. 잠시 뒤 J 권찰의 입에서 말이 떨어졌습니다.

"언니, 미안해요.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다 이해해 주세요."

사과를 받은 K 성도도 화답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동생. 낫살이나 먹은 내가 더 미안하지. 앞으로 잘 지내자구. 목사님 말씀 잘 듣고….“

이들이 주고받은 사과의 말에서 저는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J 권찰과 K 성도가 서로에게‘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을 쓴 것과 '목사님 말씀 잘 듣고'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각자 진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목사님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는 뉘앙스가 내포된 말이 분명합니다.

단순하게 보이고 좀 부족하게 여겼던 두 사람의 속이 여느 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그들 마음 속에 사랑이 굳지 않고 아직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사과하면서 '언니, 동생'하고 불렀으니 이 기회에 의형제를 맺으면 어떨까? 마침 두 사람 모두 언니 동생이 없으니까 잘 되었네. 물론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긴 하지만 더 돈독한 관계를 위해서 말이에요.“

온전한 기대를 갖고 꺼낸 말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좋아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웃음으로 좋다는 싸인(sign)까지 보내왔습니다.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입은 삐뚤어져도 표현은 정확히 해야지요. '의형제'가 아니라 '의자매'예요. 여자들이니까.“

이렇게 수정해 준 아내가 두 사람에게 자매가 된 기념으로 사랑의 포옹을 해 보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들은 힘껏 포옹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의자매가 탄생한 것입니다. 감정의 앙금도 다 사라지고,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서로에 대한 불만도 깨끗이 제거되었습니다.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는 약자와 더불어 살기를 꺼리지만, 초대교회 때 예수님께서 특별히 돌봄의 대상으로 언급하시고 사랑을 더 많이 주신 계층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 등이 그들입니다. 오늘날 표현으로는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요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제 목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쁩니다(이명재 作).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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