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계환 대표(인문연구소/독서평화포럼)

아주 오래 전에 프랑스로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업무를 조금 빨리 마치고 함께 간 동료들과 루브르 박물관에 들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박물관답게 이곳에는 3만 8천 여 점의 전시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곳에 간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함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모나리자가 전시된 공간까지 지나던 복도에는 수없이 많은 그림과 조각품들이 있었건만 내가 아는 예술작품은 오로지 모나리자뿐이었다.

인생에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는 나라 이탈리아.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루브르 박물관 방문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방문 도장을 찍거나 가이드의 깃발만을 보고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감동이 있다던가! 이제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고 숨어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인문학이 대세라며 지식을 알려주는 시도는 많지만 감동도 없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지도 못한다.

이때 해볼 만한 대안이 바로 ‘아트인문학 여행’이 아닐까? 지적 허영만을 추구하거나 성공을 위한 도구로써의 인문학이 아닌,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통해 오래된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세상의 진실을 깨닫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 책은 인문학에서 알려주는 지적 성취감과 예술이라는 문화적 소양, 그리고 여행이라는 발끝에서 오는 느낌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학습방법을 제시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력이 용솟음쳤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현장에서 말이다.

세례당 청동문을 만들기 위한 경진대회에서 떨어진 브루넬레스키는 어떻게 건축분야가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깨달았을까? 보티첼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당시 사람들에게 교양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완성된 작품을 몇 개 남기지 못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각에서 출발해 회화와 건축에서까지 다방면에서 최고의 르네상스인이 되었던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저자들은 감칠맛 나는 글과 새로운 감각의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우파치 미술관이나 바티칸 박물관처럼 실내에 모셔져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밀라노,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거리 여기저기의 예술작품을 보여준다.

김태진 백승휴 지음 <아트인문학 여행>(카시오페아, 2015)

무엇보다 이 책의 진면목은 작품에 숨어 있는 역사와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더해 작품의 디테일한 묘사를 콕콕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그저 미술을 해설해 주고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서 예술가들의 숨겨진 일화를 소개해 준다.

베네치아 화가 틴토레토가 그림 수주를 하기 위해 몰래 숨어들어가 밤새워 그림을 그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피렌체로 시작해서 로마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는 여정을 밟으면서 예술품과 작가들, 현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이야기와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기회이다.

18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몇 년 동안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를 도는 여행을 보냈다. 책을 통해 공부를 했으니 발로 밟고 느껴보라는 교육의 일환이었다. 그 이름을 ‘그랜드 투어’라고 했는데, 괴테, 바이런, 오스카와일드 같은 이들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이탈리아 도시 여기저기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멀리 동양에 사는 우리는 그들처럼 여유 있게 이탈리아를 여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발자취를 즐길 수 있는 건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덤이다.

괴테가 머물렀던 로마의 카페 ‘그레코’,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응접실이라고 불렀던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도 이 책에 있는 사진으로 즐겨볼 수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여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떤 도시에 가서 꼭 이것만은 보고 와야지 하는 확실한 안내가 부족하다. 이 책만을 보고 이탈리아로 떠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용도는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지식과 스토리를 사진과 버무려 재미있게 인문학을 알려 주는 데 있다.

다음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날 때에는 이 책을 가슴에 품고 가고 싶다. 저자들이 만났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알고 더 많이 알고, 도시의 풍광을 담은 사진을 머릿속에 놓고 가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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