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隋想)] 승차 전쟁... 그 혼몽스런 상경길

지금 후배 딸 결혼식이 있어서 상경 중이다. 꼭 가봐야 할 행사인데 깜박 잊고 있었다. 단톡방에 재공지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나저나 주말인데 기차표가 있을까. 코레일 사이트에 들어가 표 검색을 하니 모두 매진이었다. 사이트에 한참을 머물렀다. 겨우 한 자리가 나왔다.

횡재를 한 것 같은 마음에 한숨 돌리고 모처럼의 상경에 잠시 들떴다. 이 목사가 역으로 나와 함께 가기로 했으니 한결 가벼운 행차가 될 것 같다.

주말 원행(遠行)을 승차 전쟁으로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주말 이동에 기차를 이용할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김천구미역 주차장이 만차였다. 이런!

승차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위 교회 주차장에 신세를 질까 아니면 관공서 주차장에 두고 갈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내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역사 내 주차공간을 겨우 하나 확보했다며 그곳으로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또 한 번의 횡재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제 별 탈이 없겠지? 고비를 넘겼으니... 기차표 구입도 주차 문제도 해결했으니 편하게 다녀올 일만 남았다. ‘6호차 8C, 8D’ 좌석을 몇 번이나 확인한 후 자리에 안착(?)했다.

20일 그러니까 이틀 뒤 월요일 대학원 특강이 있다. 자료를 헤쳐놓고 강의 준비를 했다. '기차가 곧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종착역인 서울역까지 가니 나와는 관계가 없는 방송 멘트다. 괘념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내겐 이색적인 공간에서 자료를 독파할 때 효과가 배가된다.

손양원 목사의 생년월일, 입신 날짜, 세례 날짜... 등등을 한참 대조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한 승객이 좌석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표를 찾아 확인시켜주었다.

어, 이상하다. 중복 발행된 건가? 전산화가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믿기 힘들었다. 두 당사자가 표를 대조해가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급기야 기차 승무원까지 왔다. 전산상 중복될 일은 없는데 이상하다면서 그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폰 속의 티켓을 이리저리 밀어보더니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

"손님, 김천구미역에서 대전까지는 좌석이고 대전부터 서울까지는 입석입니다"

순간 적이 당황이 되었다.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옆 칸으로 급히 이동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낯이 화끈거렸다. 불편한 몸으로 서서 갈 일을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했다.

내게 이럴 땐 글쓰기밖에 없다. 지금 이 글이 그 과정의 산물이다. 아산천안역을 지나고 조금 더 갈 때 승무원이 급한 걸음으로 찾아왔다. 간이의자가 하나 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울 상경길을 마감했다. 새로운 사실 몇 개를 알게 되었다. KTX도 입석이 있다는 것 또 좌석과 입석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 주말과 연휴 땐 승객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도 직접 목도했다.

이런 것도 노쇠현상의 일종일지 모른다. 사고(思考)가 무디어짐을 느낄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 내게만 일어나는 일 같아 긴장하게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