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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수상] 역귀향에서 얻은 교훈
이명재 | 승인 2023.01.24 12:16

이런 것을 두고 역귀향이라고 하나요? 설날 서울 아들네집에 왔습니다. 급히 딸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오빠 집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차표를 못 구해 김천 내려오기가 어려워진 아이들입니다. 순순히 응해 주는 게 고마웠습니다.

매년 민족 대명절인 설과 추석 땐 부산 큰형님 댁을 갔습니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던 청년기까진 명절을 지키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그동안 못한 것 보상이라도 하듯 거의 빠지지 않고 큰형님 댁을 갔습니다.

명절 때마다 부산 큰댁에 모여 차례를 모신 후 가족 전체가 예배를 드리곤 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나는 큰형님과 형수님을 부모와 같이 생각하고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명절 때 형님댁 방문은 저 나름의 고향 방문이 되는 셈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때 큰 형님을 통해 어릴 적 향수가 배어 있는 고향 소식을 많이 듣습니다.

올 설명절은 관례를 이탈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설 명절 뒤 잡혀 있는 몇 곳 설교가 예정되어 있구요, 또 대학원 특강이 잡혀 있어서 마음이 분주합니다. 설교든 강의든 남 앞에 선다는 것은 늘 준비가 따르는 법이잖아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내려오지 못하고, 우리 부부도 부산에 안 가기로 했으니 발상을 조금 바꾸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습니다. 무슨 소리! 하면서 역정을 냈습니다. 설 명절 연휴 동안 잡아놓은 제 계획을 흩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귀향이라고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운전을 한 결과 김천에서 서울까지 8시간이 걸렸다.

그때부터 아내의 공략이 끈질기게 이어지더군요. 불의한 재판관에게 집요하게 간청해 목적을 관철시킨 성경 속 한 과부(눅18:1-8)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처럼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연고 없는 서울에서 얼마나 외롭겠는가. 아이들에게 설 명절 날 따뜻한 밥 한 그릇 해 주고 싶다 등등.

이렇게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저에게 이상한 생각들이 스멀거렸습니다. 그래, 서울 가서 준비할 수도 있지. 자료가 필요하면 그곳 도서관엘 가면 되고. 오가는 운전만 해 주는 셈 치자. 못 이기는 척하고 아내의 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고속도로 교통상황을 보니 설날 당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정체가 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이왕 가기로 한 것이니 고생 덜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주일 낮 예배 마치고 바로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차 안에서 먹을 과일과 음료수를 준비하느라 나름 무척 바빴습니다.

고생 끝의 상봉이어서 살가움이 더해졌다. 온 가족이 모여 정담으로 설날 밤을 지샜다.

정오가 지나고 30분이 흐른 뒤 출발을 했습니다. 고속도로 상황을 개관하고 있지 못하니 네비게이션 지시에 따라 차를 몰기로 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섰습니다. 고속도로 대전 아래엔 명절에도 차량통행이 비교적 원활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달릴 수 있어서 출발 초입의 기분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황간을 지날 무렵부터 영동 톨게이트로 나가라는 네비의 지시음이 계속 나왔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서울을 가끔 가지만 영동 톨게이트로 나가라는 것은 처음입니다. 아내도 좀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목적지를 제대로 쳤는지 물어왔습니다. 네비게이션 하단 목적지에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가 일찍 막히니 이렇게 국도로 안내할 거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달리지만 마음의 찝찝함은 털어버리기 어렵습니다. 영동 톨게이트-옥천 청산-보은 속리산-괴산-장호원-이천... 다 나열하기도 힘든 곳들을 거쳐 안성 톨게이트로 진입하였습니다. 고속도로는 여전히 멈추다 가다를 반복했습니다.

차량이 한량없이 정체하니 화장실마다 용변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 고속도로변 간이화장실은 기다리는 차량들이 몰려있어 차량 통행을 어렵게 했다(이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이번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고속도로가 막히는 이유를 단순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차량사고로 인해 수습하는 동안은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로요. 이번에 경험한 것은 그 외에 화장실 문제도 걸려 있었습니다. 정체로 장시간 고속도로 위 자동차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용변은 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됩니다.

고속도로변 간이 화장실엔 도로 위 자동차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똑같은 경험을 했으니까 그 피치 못할 모습이 어찌 실감 나지 않았겠어요. 서울 진입할 때까지 나의 자동차는 고무줄에 결박되어있는 장난감 자동차처럼 자의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들네 집에 도착하니 밤 8시 30분, 김천에서 12시 30분 출발했으니까 꼬박 8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귀성 인파보다 상대적으로 덜 많은 역귀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말았습니다. 이것저것 갖고 있던 계획이 일그러진 것은 두 말 할 것 없습니다. 8시간을 도로 위에 쏟아부었으니까요.

아내가 장만해온 음식은 가족을 즐겁게 하는 매개물이 되었다.

그래도 가족 상봉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이런 걸 예상했는지 데워서 먹으면 되도록 아내는 음식을 장만해 왔습니다. 가족이란 모꼬지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역귀향'이란 말은 아이들에게서 먼저 나왔습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면 아이들의 고향은 서울입니다. 그래서 '역귀향'이 아니라 귀향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모처럼 원치 않는 설 명절의 재미를 만끽한 셈이 되었습니다. 고통 속의 재미라고나 할까요. 이런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생각은 다릅니다. 고생 끝에 얻는 재회의 기쁨이 더 크다면서 말입니다. 설날 밤은 우리에게 피곤함도 잊게 한 채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게 했습니다.

가성비 높지 않은 대화라고 생각되지만 아이들은 가족이 모여서 주고받는 말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설날 밤은 이렇게 익어갔습니다. 오랜만의 정담으로 따뜻함이 몽실몽실 피어올랐습니다. 벽시계의 시침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를 되뇌며 잠이 들었습니다(발행인 이명재 記).

세배를 한 아이들에게 세뱃돈으로 만원짜리 신권을 주며 덕담을 건넸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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