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틀고 간사이(關西) 여행(2) - 니혼바시(日本僑) 마루에이(まゐ榮)

옆 방에서 쉬고 있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5시 30분까지 호텔 로비로 내려오시라고 했다. 아이 셋이 이미 내려와 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장어구이덮밥이라고 했다.

여행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인터넷에서 인근에 있는 맛집을 찾은 것 같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걸어서 가도 되겠지만 몸이 불편한 나를 생각해 아이들이 택시를 불렀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그 음식점은 오후 5시에 문을 여는 데요, 가서 좀 기다려야 될지도 몰라요.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얼핏 보기에 허술한 포장마차 같았다. 하지만 이곳 '니혼바시(日本僑) 마루에이(まゐ榮)'에서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뛰어난 맛을 선사하는 장어구이 덮밥이 만들어진다.

택시가 음식점 앞에 도착했다. 포장마차 규모로 보였다. 건물 1층에 입점해 있어서 그렇지 엉성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런데 듣던 대로였다. 오후 6시가 채 안 된 시각인데 10여 명의 손님이 간이의자에 앉고 또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엉거주춤 줄을 서 있는데 한 젊은 여성이 간이의자를 들고 와서 앉을 것을 권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주 자리를 양보받긴 했지만 일본에서의 자리 양보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착하게 보이는 얼굴에 꾸밈없는 수수한 모습이 친절한 행동으로 이어진 것 같아 고마웠다. 40분여가 지나고 우리의 순서가 되어 음식점 입실이 허락되었다. 테이블 3개, 1인용 탁자 5개...

쌀쌀한 겨울 날씨임에도 대기 손님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도락은 추위도 뛰어넘는 모양이다.

밖에서 보기엔 한두 사람이 일하는 식당으로 생각했는데, 들어와 보니 종사원이 5명이나 되었다. 일을 분담해서 척척 음식을 만들어냈다. 마치 자동화된 기계의 과정과 비슷한 손놀림들이었다. 전통 있는 음식점일 것이다.

손님을 접대하는 청년은 얼마나 친절한지 음식을 먹어 보지 않아도 오고 싶도록 만들었다. 아까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젊은 여성에게 따뜻한 국물을 갖다 주는 것이 흐뭇했다. 내가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처럼...

테이블에 앉아서도 좀 기다려야 했다. 그런 낌새를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도 코팅된 안내판을 갖다 주면서 사진 찍기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밖에서 식당 입구와 대기 손님 모습을 촬영한 것을 넘겨보지 않았나 싶다.

알림판에는 주방과 다른 손님 얼굴 촬영은 금하되 같이 온 손님 일행은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내용이 일본어와 한글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 지침을 깨지 않으면서 몇 컷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주문한 장어 덮밥이 차례대로 나왔다.

시킨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차례대로 나왔다는 것은 음식을 주문 받고 만든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 다섯 식구가 식사를 하는 경우, 가장이자 연장자인 내게 먼저 음식을 갖다 놓는다. 우리나라에선 그랬다.

하지만 이 ‘니혼바시(日本僑) 마루에이(まゐ榮)’ 직원은 아내 앞에 음식을 먼저 놓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퍼스트 레이디!", 즉 부인 먼저라는 것이다. 좀 특별하게 여겨졌지만 신선해 보였다.

장어구이 덮밥이 차례대로 나왔다. 여성 먼저, 남성 나중의 순서였다. 서양문화를 닮고 싶어하는 일본인의 심성이 엿보였다.

과연 맛있었다. 맛뿐 아니라 격조까지 갖추고 있는 그 장어 덮밥을 우리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평소 이런 자리에서 양이 많다며 내게로 음식을 떠 옮겼던 아내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12월 하순의 일본 날씨도 겨울을 벗어나 있지 않았다. 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번의 식사로 대기의 이유가 확인된 셈이다. 여행기에 한 음식점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도 이해되었으리라.

딸 아이의 질문이 있었다. 이렇게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면 식당의 크기를 확장할 법도 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어령 선생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 답이 있다.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대 잇는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이기 때문이라는...(오사카=이명재 발행인).

이 음식점의 이름이 박힌 가림막이 입구에 처져 있고 그 옆에 따로 한글로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그만큼 많이 방문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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