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과 함께’ 창립총회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오늘 약산 김원봉 선생을 새롭게 기리기 위해 ‘약산 김원봉과 함께’를 출범시켰다. 이런 사업은 진작 시작했어야 했지만 우리 민족이 처한 분단의 기구한 제약 때문에 너무 늦었다. 약산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 선열들께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늦었지만 이렇게 발걸음을 대디뎠으니 ‘약산과 함께’하는 이 모임이 독립운동 선열들께 부끄러운 민족적 회한을 제대로 풀어주는 단서가 되기를 간절하게 염원한다.

이미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지만, 몇 년 전 필자는 밀양 시민사회 원로들과 약산 선생의 생질 김태영 선생의 협력을 얻어 한홍구 교수와 함께 ‘약산김원봉선생기념사업회’를 성공회대학에서 발족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는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만큼은 분단구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각오로 시도했지만,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더 열심히 약산 선생 기념사업에 열의를 가져왔던 동향인들의 진지함 앞에서 우리는 그 사역을 스스로 접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에 이번에는 약산을 흠모하는 경향의 선각들이 과거 여러 뜻있는 이들이 구상해 왔던 이상을 집합적으로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몇 자 적겠다.

약산 선생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19년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받았고 그 무렵 동지 11명과 함께 ‘의열단’을 창립했으며, 1923년에는 단재 신채호를 통해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했다. 필자는 ‘조선혁명선언’만큼 힘 있고 선명한 글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약산은 그 뒤 활동기지를 중국 관내로 옮겨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1938)를 조직하는 등 임정과는 결을 달리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뒷날 중경의 임정에 합류, 광복군 제1지대장, 임정 군무부장을 역임했고 임정을 좌우연합정부로 재구성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그의 독립운동의 혁혁함은 일제가 김구보다 현상금을 더 많이 걸었던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해방 후 서울로 귀국, 여운형과 협력하며 좌우합작의 통일국가 건설을 염원했으나 평양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북한 정권에 협력함으로 그의 독립운동 공적은 대한민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약산김원봉선생기념사업회’를 조직하면서 우리는 이 점에 크게 유의했다. 현재 우리 정부의 독립유공자공적심사는 사회주의자에게는 차별을 두고, 북한정권에 협력한 자에게는 공적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 결과 약산처럼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적이 있지만 독립유공자로서 남북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이들이 있게 되었다.

북한 정권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조선독립동맹의 주역인 연안파 김두봉의 경우도 그렇다. ‘종파주의’로 인정된 후 그의 모든 공적은 사라졌다. 한글학자로서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은 이극로도 김두봉과 함께 북한정권의 한글정책을 주도했기에 남에서는 독립유공자 심사대상에 오르지도 못한다. 북한에서도 북한 정권을 수립한 독립운동 계열 중 김일성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해방된 지 77년이 지났는데도, 과거 독립운동에서 공적을 쌓았으나 남북 정권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안식처를 찾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약산 김원봉이다. ‘약산기념사업회’를 발기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이 문제부터 널리 알리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독립운동에서 누구보다 혁혁한 공적을 쌓았으면서도 남북한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를 어떻게든 모셔서 그 공적에 값하는 대우를 민족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부끄럽고 늦었지만, 후손의 도리일 터이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현행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개인의 독립운동 평가의 시점은, 하한선은 1945년 8월 14일이며, 그 전에 돌아가신 분은 돌아갈 당시의 독립운동 여부를 따지면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8.15 이후의 행적을 독립운동 심사의 조건으로 뒤섞었다. 그렇게 함으로 독립운동 자체를 이념화시켜버리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와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점이 있다. 지금 독립유공자의 공적이 건국훈장체계에서 표창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독립운동 공적 표창은 ‘건국’이라는 체제 내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건국훈장’으로 체제화시켜버리면 독립운동자로서 북한정권에 봉사한 이는 그 공적을 수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말은 독립유공자가 북한에서 봉사했을 경우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으로 보답 받는 것이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때문에 독립운동유공자 포상에서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가령 ‘독립훈장’ 같은 새로운 포상체계라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만열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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